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Call Directions Contact the organization

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Center for Spiritual Direction & Formation

10/17/2026

로마( Rome)와 앗시시 (Assisi) (1)

배정웅 목사
Spiritual Director/ Chaplain



금주 일주일간 특별한 나들이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오랫 동안 마음 속에 품어온 나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인 로마와 앗시시를 방문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로마는 대단한 도시였다. 주변의 현대적 건물들 사이 사이로 2천년전 로마제국의 성벽과 그 잔재들이 곳곳에 공존하는 과거와 현대가 살아 숨쉬는 도시였다. 웅장한 콜로세움 옆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가운데 손꼽히는 현대적인 지하철 역이 지나가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 인파들로 발을 디딜 곳이 모자라고 그야말로 사람들로 치일 정도로 붐비는 곳이었다.

로마 시내 도로 곳곳에 그 옛날 로마시대의 도로 원형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여전히 사람들과 차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물론 작은 돌을 쪼개서 모자이크 처럼 이어온 로마식 도로들이 오늘날 현대적 아스팔트 길보다 사람과 차들의 통행에 조금 불편해 보이는 점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 광장 한 가운데 기둥 몇개와 돌덩이가 보존되어 있고 그 옆을 차들이 분주히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 돌덩이들이 옛날 극장 자리였으며 바로 그 장소에서 시저 황제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당한 자리란다.

이처럼 로마 시내 곳곳이 2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유적지 이긴 하지만 필자의 관심은 이런 화려한 로마제국의 잔재보다는 교외의 아피안 가도 곁에 들어선 초대 기독교인들의 아픔과 고통이 깊게 배여있는 카타콤에 더 관심이 쏠렸다.

카타콤은 지하 무덤으로 초대 기독교인들이 특히 네로 황제 시대를 거쳐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까지 약 300년 이상을 무자비한 박해와 처형으로 “예수 믿음”은 곧 모든 공민권 박탈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 압수와 사형에 처해지는 최악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선택한 초대 크리스챤들이 몸을 숨기고 비밀리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다.

필자가 방문한 아피안 가도 주변의 여러개의 카타콤 가운데 칼립토스 카타콤은 그 중 가장 크고 유명한 장소인데 시대를 따라 지하 4층으로 파 내려간 이 모든 카타콤의 총 길이를 계산하면 약 20 킬로미터에 이르며 동굴 벽을 따라 죽은 신앙인들을 뭍었는데 그 총 수가 약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살아나오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미로였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도피처로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내 생에 가장 숙연하고 숨 쉬기도 힘들만큼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이들은 결국 313년 이후에 기독교 공인으로 비로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피안 가도는 로마가 세계로 연결되는 고대 로마의 중요한 도로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바로 그 길이었다. 그 어느 지점에 예수님의 수제자 였던 베드로 사도가 박해를 피해 이길을 따라 로마를 탈출하려다 다시 도성향 향해 발길을 옮기는 주님을 만나 그 유명한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를 물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 때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이 나는 네가 도피하는 로마로 간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오던 길을 돌려 로마로 들어가 나는 십자가에 똑바로 박혀 죽을 자격도 없다고 선언하고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한다.

2000년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기독교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숭고한 희생과 피흘림 위해 서서히 다져지고 세워져왔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안일해진 오늘날 나의 믿음의 현주소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08/31/2026

인생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

Janet Johnson Anderson의 시 “How to Climb Life”

배정웅 역

(약간의 AI 도움을 받아 영문시에서 직접 번역을 시도해 보았으나 비전공자로써 서툰점이 많음을 양해바랍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천천히 시작하라

그대의 무거운 과거를 내려놓고

그대의 순례길에 우리가 함께 동행함을 알라.

그리하면 시작하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리니

용서의 빗장을 풀고

희망을 향해 방향을 틀어

믿음으로 부드럽고 견고한 발걸음을 이어가기를 훈련하여

진리와 자비라는 보듬는 발판 위에 균형을 잡고 서서

우리와 함께하면

다시 힘차게 나아갈 회복과 영양소를 공급받게 되리라.



때로는 그대가 거친 바위 투성이의 절벽턱 위에 서게 되더라도

우리 또한 같은 길을 올라 왔음을 알라.

그렇게 그대를 위해 견고한 안식처를 내어주고

쉴만한 공간을 제공하여

현존 속에 들어가

그대를 자비롭게 품어주는 긍휼의 나라를 바라보며

광활하고 넓게 뻗은 신성한 사랑의 팔을 발견하리라.



위를 올려다 보지도 말라.

오르기 불가능해 보이는 압도적인 규모의 절벽이

그대의 마음을 억누를 때도

그리하면 그대가 얼마나 멀리왔는지 보다

또는 그대를 지속케 하는 능력이 어떠한지 보다

앞으로 성취하도록 남겨진 것들만 보리라.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말지니

그 첫 푸른 걸음들을 갈망하며

​초창기 불꽃이었던 이들의

빛나던 마음과 생각,

지나온 길과 익숙하고 안전했던 둥지를

다시 사무치게 그리워하게되리라.

07/11/2026

다음의 설교요약은 이번 6/29-7/10일간 한국방문 중 필자의 모교 덕수상고 62기 크리스챤 모임의 초대에서 행한 설교 요약문입니다.

설교 제목 : 70 문턱을 넘어선 인생
성경 : 시편 90:10-12

노년, 하루 하루 달라짐을 느끼는 몸, 반전 운동가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Pete Siger 늙어감을 노래한 가사가 떠오른다.

『귀는 서랍장에 벗어놓고
이는 물잔에 빼놓고
눈은 탁자에 올려놓고
잠을 청하며 꼼꼼히 생각하네.』

⚫ 남은 날을 세면서 사는 지혜가 필요한 때
삶은 얼마나 오래사는가 보다 어떻게 나이 드느냐가 중요하다. 이럴 때 "노년은 사회의 짐"이 아닌 생산적이고 필요며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최근 통계로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5.5세라는데 평균수명 83.7세를 살 동안 17년을 병상에서 남에게 의지해서 산다면 100세 시대의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노년을 노래한 헨리 롱펠로우의 시를 감상해보자.

『노년도 청춘 못지않은 기회이니
청춘과 조금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저녁노을이 희미하게 사라지면
낮에 없던 별들이 하늘을 채우네.』

⚫ 어떻게 우리의 남은 날들이 별을 찾는 삶이 되게 할 수 있을까?

1) 사랑의 실천과 그 열매를 추구하는 삶
- 칼 메닝거 : 타인 위한 헌신적 삶을 사는 사람치고 정신병 앓는 사람 본 적 없음
- 병원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로즈 할머니 : 은퇴후 60세부터 외로운 환자들의 친구로 자원봉사하다 100세 첫 달에 평화롭게 소천.

2) 노년의 필수 과제 : 용서와 감사의 표현
- 화해와 용서 : 죽기 전 최후의 순간까지 가장 뚜렷이 생각나는 그 사람은 화해하지 못한 사람.

- 감사의 표현 :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너무 의미가 있어 감사하다’ 말하기

3) 믿음과 내려놓기(Letting go)
- 헨리나우웬이 설명하는 공중곡예사 이야기

공중 곡예사 : 서커스의 꽃이라할 수 있는 화려하고 아찔한 공중곡예의 성공적이고 안전한 필수요소는 flyer가 먼저 움직이지 말고 catcher가 그의 시간과 판단과 방법으로 다가와 flyer를 붙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네를 박차고 허공을 날아야 서로가 안전하게 성공적 곡예가 가능해진다.

- 하나님 : 우리 인생 여정의 가장 확실한 catcher이시다.
- 예수님 :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을 예비하시고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시며 우리 인생의 가장 확실한 동반자이며 붙들어주시는 분 (catcher)이시다.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우리 삶에 다가와 우리를 붙들어 주실 때 비로서 안전하게 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팝송가수 피트 시거의 고백

『지금 이 시간 당신과 내가 하는 일이 영원에 영향을 주네. 하나님은 나를 믿어. 하나님은 당신을 믿어.』

⚫ 맺는 말

남은 인생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추락의 순간에도 우리에게 다가와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평안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멋있고 행복한 노후가 되시기 바랍니다.

12/28/2025

내 마음의 두레박 (10)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ion



2주간 연말 휴가를 내서 뉴욕 북부의 캐츠킬 (Catskill) 산자락에서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를 새롭게 맞이할 준비를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하기야 언제는 조용히 지나간 때가 있었으리요마는 유난히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혼돈스러운 2025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한 해 였다.

미국도 무리한 관세정책과 이민자 강경 추방정책으로 수 많은 이민자들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추방되었으며 지금도 합법적인 거주 허가를 받은 영주권자들과 귀화 시민권자들조차도 점점 조여오는 추방의 압박에 몸을 떨고 있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개개인들이 영끌을 동원해서 무리하게 자신의 능력 밖의 비싼 집을 구입하여 가계부채가 치솟아 파산의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비관적인 보도도 접하게 된다. 나아가 젊은이들이 빚을 끌여들어 무리하게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다 파산하는 수가 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들여오고 있다.

또 속도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쿠팡이라는 배송 업체의 비리가 세간의 화제를 집중시킨 한해이기도 하다. 신속, 쾌속 배달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이들의 무책임, 불성실,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기업윤리로 운영된 결과 오늘과 같은 수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도 나 모른채 타국에 숨어 그 사회적 책무를 유기한 채 반성 없이 버티고 있는 중이라 많은 원성을 사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나아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더더욱 극적 반전을 이루었다. 비상계엄과 그 여파로 사회가 극도의 불안 상태에 이르렀으나 그 책임자들의 파면과 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빠르게 안정을 이루어가고 내란에 가담한 자들이 하나씩 죄값을 받고 단죄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적으로 이런 현상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너무 조급히 자신이 능력 밖의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고 남보다 빨리 돈을 더 벌고 성공하고 권력을 더 크고 더 오래 누려보겠다는 과욕이 그 주범이란 사실이다. 그 결과는 개인의 파산이요, 회사의 파멸이요 국가의 퇴행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혼란과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겪으며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삶의 대원칙이 무시되고 있음을 거듭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가 그토록 중시하는 속도 보다는 방향이 보다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무시되고 있음이다.

좀 느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한 투자, 빚이 없는 투자가 우선이다. 좀 늦게 배달되더라도 노동자의 기본소득 보장과 건강과 인권을 배려함이 우선이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좀 손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직하고 합리적이며 정당의 정책과 철학에 부합되는 지도자를 신중히 선택하느 일이 보다 우선적이다.

결국 누가 정직하며, 누가 더 약속에 충실하며, 누가 더 신뢰받을 수 있느냐가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일보다 우선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무시되는 한 이런 사회는 겉은 화려하고 멀쩡한것 같은데 속은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도 결국 다시 되돌이키려면 열심히 달린만큼 더 멀리 더 힘들게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속도 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결국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기는게 역사의 순리이다.

새해에는 부디 우리 모두가 가끔 멈춰 서서 과연 내가 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속도와 방향조정을 통해 좀더 성숙한 나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12/22/2025

내 마음의 두레박 (9)
-평화의 조건-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성탄절이 몇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주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며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 평화의 초를 밝히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 세상에 평화가 오고 있는가를 다시 묵상해 보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져 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이 세상의 평화가 파괴되어가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왜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보다 폭력과 전쟁과 살상이 나날이 증가되어 가고 있는지를 거듭 묻고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이상적인 평화의 시대 도래를 “사자와 양이 함께 풀을 뜯으며 어린 아이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 모습”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거리가 멀게 이 세상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침략하여 파괴하고 협박하며 힘이 약한 상대는 맹독을 동원하여 물어뜯고 죽이려드는 세상이 아니던가? 어떻게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라고 거듭 묻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먼저 생각해 볼 전제는 사자와 양이 함께 풀을 나누어 먹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강자인 사자가 변화되어야만 평화로운 세상, 공존의 세상이 가능해 진다는 사실이다. 원래 양은 초식동물임으로 다른 변화가 없이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러나 사자가 육식 동물에서 초식동물로 바꾸지 않는 한 사자와 양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결코 이룰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고 죽지 않는 공존의 세상을 이루려면 독사가 자신의 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불가능하다. 또한 독사는 자기 덩치보다 몇배가 큰 상대도 그 큰 입을 벌여 삼켜버리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 기다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원리로 강대국이 약소국에 양보하지 않고 먼저 침략하고 수탈하는 채로 휴전을 강요하는 한 결코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없다. 그렇게 협박과 강요에 의해 할 수 없이 휴전을 맺은들 이를 진정한 평화라 볼 수 있겠는가?

사자도 독사도 자신의 가진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 폭력이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양과 어린이와 함께할 수 없다.

힘을 가진 권력자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시도하고 양과 어린이와 같은 선한 국민들을 총칼을 동원해 억압하려는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비성서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한 그 어디서도 평화는 단지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으리라.

더구나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같은 편이라고 무조건 이런 세력들을 옹호하고 지지해온 맹목적 동조세력들도 이 기회에 철저히 자기 반성과 거듭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대형, 큰 힘을 맹신하는 세력들을 옳고 바르다고 그 숫자만 보고 맹종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한 사자와 독사들을 통해 세상은 더욱 파괴되고 평화는 멀어지고 말리라. 이는 삼척동자라도 아는데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게 왜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한국의 한 택배회사가 너무나 불리한 근로조건으로 적지 않은 숫자의 노동자들을 사망으로 몰았다는 사실에 온 국민들이 분노하는데도 자신들은 전혀 잘못이 없고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책임을 발뺌하는 한 힘없는 양과 어린이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과 같이 풀을 뜯거나 그 구멍에 손을 넣을 수도 없음이 자명하다.

최근 디즈니 다큐멘타리를 (The End of an Era) 통해 공개된 사실이 세간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유명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약 1억 9,700만 달러 한화로 약 2800억원 이상을 자신을 위해 일해온 트럭 운전사, 댄서, 밴드 멤버, 케이터링 팀, 조명및 음향기술자, 보안 요원 등 스탭에게 보통 업계에서 지급하는 특별 보나스 보다 10배 넘는 통큰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결단으로 심지어 트럭 운전자 약 50명에게 1인당 10만 달러, 한화로 1억 400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단순히 돈만 보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쓴 감사편지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나아가 작은 도시에서 공연할 때마다 무료급식을 위해 수만명의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금액을 꾸준히 쾌척해 왔다고 한다.

힘을 가진 강자들이여, 사자와 독사가 먼저 변화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평화는 결코 달성하기 어려운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자. 자신의 그 대단한 권력, 재산, 명예, 지식으로 약자를 돕는데 기꺼이 사용하며 그들을 억압하지 않을 때 비로서 평화는 단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아울러 “칼을 쓰는자는 칼로 망하리라” 는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빛으로 오신 겸손하신 그 분의 말씀을 귀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닮아가는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12/18/2025

내 마음의 두레박 (8)
-성공하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성공하려면 아침에 일어나 먼저 침대부터 정리하십시요” 이 유명한 말은 미국 퇴역 4성 해군 제독이었던 윌리엄 맥레이븐 (William H. McRaven) 장군이 2014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졸업식의 축사 가운데 강조한 내용이었다. 그는 37년간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로 복무하는 동안 그가 깨달은 삶의 핵심 교훈을 정리하여 강조한 내용이다.

2년전 필자가 어느 유투브에서 이 제목을 대면하고 내용을 파악한 순간 무릎을 탁치고 공감하였다. 소중한 가르침이라 판단하여 즉시 실천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하필이면 많은 훌륭한 명언과 교훈들이 많을텐데 왜 침대정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따를 수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단순한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단순히 청결유지 이상으로 큰 심리적 이익과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강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하루에 일어나 먼저 침대부터 정리한다는 말은 자신의 하루 첫번째 과제를 완수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성취감이 자신의 하루에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부심과 더 나은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하여 필자도 목표를 정하여 이 작은 과제를 묵묵히 실천해 보기로 작정하고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과연 이 작은 일로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작정했다.

그 결과 내 삶에 일어난 변화는 다음과 같다.

한달이 지난 후 점차 내 마음의 혼란한 침상도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점차 더 세미한 일들까지 관심이 집중되고 정리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침대를 꾸준히 정리하고 하루를 시작하니 내 방에 너무 정리가 않되고 흐트러진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소를 자주하게 되었고 옷장도 흐트러지고 아무렇게나 널려진 옷들을 하나 하나 제자리에 걸고 깔끔하게 정리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의 시간관리도 달라졌다. 좀더 철저히 아주 사소한 자투리 시간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약속 시간도 철저히 관리하고 그 결과 시간을 어기는 실수들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면 오늘 일기예보에 눈이온다하면 내일 아침 출근 시간에 눈을 치우는데 적어도 30분 정도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고 아침 기상시간 시간을 30분 일찍 일어나도록 시간을 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 다른 동료들은 당연히 30분 이상 지각을 하였는데 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정시출근을 찍게 되었다.

또다른 유익은 재정적인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점점 나의 작은 지출에도 신경을 더 꼼꼼히 쓰게 되어 인터넷 상에서 자동적으로 빠져나가는 불필요한 지출이 있음을 발견하여 사전에 차단함으로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나의 삶이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주차시간 위반이나 신호위반이 사라져 많은 벌과금이 사라졌고 같은 수입이지만 쓸데없는 지출이 줄어들고 꼭 사용해야될 곳에 적절히 내 수입이 사용되는 결과 즉 재정적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침대정리는 이어 내 마음 속의 흐트러진 침대를 들여다 보고 흐트러진 부분들을 차곡 차곡 정리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음이 정리 정돈되니 조급함도 줄어들고 충동적이 언행이 자제되고 마음의 평화도 점차 찾아오게 되어 훨신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큰 유익은 이제부터는 내가 마음 먹은데로 내 몸을 움직여 행동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과 그로 인한 놀라운 성취감을 이뤄내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런 믿기 어려운 놀라운 결과가 내 삶에 점점 정착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하루 일과 중 TV 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기도와 묵상과 독서와 글쓰기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거르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실천하니 건강도 많이 개선되고 몸도 훨씬 가뿐해진 느낌이다. 당뇨약도 빠짐없이 챙겨먹고 음식도 더 세밀하게 조정해 섭취하니 몸의 여러분야에서 그 효과가 느껴지고 있다.

즉 내가 해야할 일은 더 철저히 실천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더욱 세밀하게 통제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소한 원칙이라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고 실천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원해도 소위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빌려 설명하자면 "주의, 집중력 결핍증(ADHD)"이나 " 강박적 충동적 증세 ( OCD)" 같은 사람들의 경우 전자는 작은 일에 즉 디테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그 일을 끝낼 수도 없다.

이런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경우는 이 방식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비 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병적인 이들은 극단적이다. 그 결과 아무리 원해도 침대를 아예 정돈할 의지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거나 너무 열심히 침대와 주변정리에 모든 자신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하게 되는 서로 다른 방향의 병적상황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는 특수한 예외이기 때문이다.

강박증세의 환자는 너무 세밀하고 작고 즉 디테일한 일에 관심을 과도하게 드러내고 그 작은 하나의 나무에 목숨을 걸고 지키려 과도하게 집착하여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증세이다. 그래서 병이며 그래서 의사의 처방과 필요하면 약도 사용해서 그 증세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오늘 나의 삶은 2년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성취적이고 결정적이고 건강해졌다. 이제는 마음 먹은대로 몸이 예전보다 훨씬 순종적으로 따라준다. 이 믿기어려운 놀라운 변화가 아침에 일어나 5분간 침대정리를 시작하여 일어난 긍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효과들이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되다”

“악마는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손해볼게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주저하지 말고 침대부터 정리해보자.

12/14/2025

슬기로운 병원생활 (46)
-열린 마음의 중요성-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채플린의 우선적 목표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현재 격고 있는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공감해 주고 그 고통의 순간을 지혜롭게 잘 통과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하는데 있다.

따라서 채플린이 얼마나 자신의 선입견과 그로인한 섣부른 판단과 정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고 그 결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이 현재 체험하고 통과하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느냐 즉 진정한 함께함을 (presence)실천에 나갈 수 있느냐에 그 사역의 초점이 맞춰지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필자가 병원에서 거듭 경험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 나의 정체성은 한인, 장로교 목사요 한국식 예의범절, 어쩌면 많은 부분이 유교적 전통을 무의식적으로 물려받고 뼈속 깊이 새겨져 있는 한 채플린이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무리 나의 종교적 문화적 제한을 벗어나 폭넓고 다양하게 열린마음으로 환자들과 가족들과 다양한 전문직 직원들을 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불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젊은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을 대할 때 이쪽에서 먼저 예의를 갖춰 (?) 인사를 하면 보통은 저쪽에서도 형식적으로라도 인사를 받아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좀 예외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이쪽에서 노력을 해도 도무지 대꾸도 없고 심지어 외면하는 사람들도 드물긴 하지만 경험하게 된다. 환자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마나 내가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내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런 행위들이 용납되지 않아 분노하고 힘들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되돌아 보면 이 미국이란 사회는 특히 뉴욕은 다양한 민족, 가치관 삶의 배경을 가진 채 서로 섞여 살아가는 특수한 지역이 아니던가? 따라서 내가 인사 한다고 그들도 반드시 나의 방식과 요구대로 인사를 되돌려주어야 바른 인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깨달음이었다.

이는 어쩌면 나의 고정된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틀리고 나쁜 사람이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하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물음이었다.

아무리 채플린 교육과정에서 이런 문화적 종교적 다름을 뛰어 넘어 이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라는 훈련을 받았어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무의식 적으로 (비록 이론적으로나 의식적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나의 자아를 붙들고 있는 강력한 저항이 드러나고 있는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종교적 문화적 또는 그에 따른 가치관이 틀리기 때문에 포기라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단단한 정체성 위에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자세 곧 진정한 공감의 자세를 (compassion )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 문제에서조차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로 작정했다. 즉 아무리 인사해도 대꾸도 없는 사람들은 나도 너무 신경쓰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스스로도 너무 긴장하거나 또 내가 원하는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때로는 나의 가치관을 고집하고 강요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이 집착에서 벗어나 나와 너 모두가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아래 살아가고 있는 너무나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외면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니 이처럼 편할 수가 없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내 기준으로 바뀌도록 강요해서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도록 바꿀 수 없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11/30/2025

내 마음의 두레박 (7)
-말과 삶의 일치가 중요한 이유-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어제는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오래전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한 목사님을 뉴저지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는 80년대 초에 신학교를 졸업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30대 젊은 청년이었던 우리가 70이 넘어서야 비로서 해후하게 되었지만 서로 머리가 희어진 노년의 모습으로 40년 정도 세월은 보낸뒤 이제야 뒤늦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반갑고 기뻣다. 그간 이분은 한국에서 성실하게 목회하며 많은 이웃들을 돕고 그 선한 영향력을 한국과 여러 나라들의 이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유감없이 발휘한 누가봐도 소위 성공적인 목사이었다.

그 유명세 (?) 때문인지 뉴져지 친척집을 잠깐 방문한 사이 번개 모임을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 뉴져지 뿐만 아니라 동부지역 멀리 심지어는 보스톤에서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이미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지 거의 10년가까이 지났지만 대단한 열정이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친척이 사는 아파트 옥상 펜트하우스를 잠시 빌려 가진 모임은 특별한 형식이 없이 그분의 평소 목회 스타일대로 자유로운 신앙생활 관련 질의와 응답시간으로 약 2시간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 뿐만 아니라 필자도 그 대화를 통해 큰 은혜가 되었다.

아무런 형식도 미리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던져진 다양한 질문들에 필자뿐만 아니라 참석자들 모두가 큰 감동과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처럼 기독교에 대한 나아가 목회자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끊임없이 가해지는 시대에 그의 이처럼 사람을 끌고 존경받는 비결이 무엇일까를 영성지도를 전공한 목사의 한 사람으로써 사적인 관계를 떠나 진지하게 물어보는 계기를 제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진솔했다. 소위 다른 대형교회 목사와는 다르게 전혀 권위의식이 없었고 그 어떤 즉석 질문에도 담담히 답변해 나갔는데 그 모든 응답에서 자신의 삶과 경험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답변은 (또는 공식적인 예배의 순간에서 설교를 통해서도) 전혀 가식이 없이 어떤 성경말씀을 전달할 때 그동안 자신도 그 문제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고민했으며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기에 단순히 이론이나 머리에서 나온 응답과는 차이가 있는 실제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지난 6년간 암으로 투병하며 그 힘든 과정에서 어떻게 은퇴 이전에 못지 않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데 큰 감동이 전해졌다.

그는 이런 투병과정에서 불평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하루 하루 연장해 살아가고 사역해 나간다는 설명에 여러 명의 동일한 투병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참석자들이 큰 감명과 힘을 얻었노라고 고백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다시 필자의 지속적인 관심사인 영성지도의 측면에서 큰 깨달음이 느껴졌다. 결국 한 목회자나 어떤 크리스찬의 삶도 자신의 말과 그에 입각한 실천 즉 말씀과 삶의 일치가 곧 그 사람이나 단체의 영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는 이해였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조롱받고 버려지고 짓밟히고 있는가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즉 생명의 말씀, 구원의 진리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삶과 실천이 불일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배척과 외면과 그에 따른 쇠퇴의 근본 원인은 목회자를 위시해서 각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믿고 따르고 입으로 강조하는 복음에 문제가 있지 않고 말 따로 행동 따로 분리된 모습에 기인한다고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은 달변가나 고학력자들의 유창하고 번드르한 말로 변화되지 않는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말들은 유능한 선동가를 양산할 따름이다. 이들은 오히려 세상을 크게 오도하고 시각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구덩이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 세상은 자신의 말에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을 통해 변한다. 지금도 세상은 이런 사람을 목마르게 갈구하고 있다.

결국 한국 교회의 영성의 쇠퇴는 진실성이 결여된 그리스도인들의 분리된 삶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회 밖의 사람들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비웃고 조롱하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교회가 거룩과 진리와 섬김을 강조해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회복은 무너진 영성 회복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영성회복은거짓된 삶의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내어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무리 손해와 큰 책임이 뒤따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려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결국 영성회복은 진실성 회복이라는 선결과제를 결코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할 때 예수께서 강조하신 바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우리 모두 거짓된 삶을 회개하고 철저히 거듭나야할 때이다.

11/24/2025

내 마음의 두레박 (6)
-어디서 행복을 찾을까?-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오늘은 휴무일,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무슨 깨달음이 떠오르는지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웬지 모르게 커피를 한잔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내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기다리는 시간이 잔잔히 흐르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과 더불어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오늘이라고 다른 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인데 왜 갑자기 이런 기분이들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오늘 아침 시간에 1 학년짜리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아이들 엄마 아빠가 시간이 되는대로 걸어서 15분 거리의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오늘따라 이 임무가 집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떨어졌다.

이런 행운(?)이 자주 내게 주어지지는 않지만 오늘따라 내가 집에 있는 날이고 또 부모들이 바빠서 내게 요청이 왔기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귀찮은 일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시간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이 시간을 통해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친밀감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앞에는 다른 부모들도 비록 서로 다른 피부와 생김새가 각각 다르지만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오는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 짧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과 행복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헌데 자세히 보니 오늘따라 손자의 얼굴이 침울하고 슬퍼보이기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손자가 답하기를 동생이 학교에서 데려온 집게 한마리를 2주간 자기 집에서 돌보게 되어 너무 좋아하고 이름까지 붙어주고 잘 돌보아 주었는데 이번 주에 학교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소식에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말했다.

아침에 엄마 품에서 서럽게 울었단다. 자기 소유의 모든 인형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시키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눈가가 불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 심지어 자기 집에서 몇주간 돌보던 그 작은 집게 한마리까지 아끼고 사랑하고 헤어지기 싫어하는 그 부드러운 마음이 바로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칭찬하신 그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8:3)

동시에 오늘 이 시대를 반추해 볼때 어른들이 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와 혼돈을 주고 있는지도 생각이 이르었다. 지금도 지구촌 여기 저기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민간인과 수 많은 어린이들이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야만적인 시대를 우리가 어린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리 겉으로 정의를 부르짖고 평화를 내세워도 이는 켤코 천국과는 무관한 비생명, 비평화적이며 잔인한 어른들의 무자비한 모습을 그 천진하고 순박한 아린이들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가자지구의 어린이들,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들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시대 어른들은 이런 여리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어떤 공포심과 파괴와 혼돈을 심어주고 있는지? 이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지 않는 강팍한 마음 속에 어떻게 천국이 임할 수있기를 기대하겠는가?

오래전 성경말씀에는 천국의 이상적 모습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사야 11:8) 이처럼 어린이는 항상 천국의 이상적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천국의 실현은 거창한 구호나 이데올로기적 충성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타자를 향한 -심지어 미약한 동물에게까지도- 사랑과 동정심을 함께 나눌 수있는 바로 그 현장이 아닐까? 바로 그 때 우리의 마음에도 천국이 세워지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과 만족한 삶이 싹트고 자라나지 아니겠는가?

11/20/2025

내 마음의 두레박 (5)
-약자의 수난시대를 살아가는 자세-

배정웅 목사
Chaplain and Spiritual Director



요즘 세계 어느 나라에 산다한들 요동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마음이 편할 날이 있겠으리요마는 이 미국 땅에 살아가는 일도 하루 하루 만만치 않은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민자라는 이 사회 소수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연일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고 무리하게 체포하고 추방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 아래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는 서류미비자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취득한 영주권자 심지어는 시민권자들에게까지 의심의 눈총을 따갑게 보내고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고 빈틈만 보이면 추방할 구실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주권자도 과거의 어떤 경범죄 사실이라도 확인되면 범죄자로 추방하려는 강경정책이 이미 실시중에 있어 여러 한인들도 입국시 거부되어 추방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음을 한 한인 과학자의 입국과정에서 체포와 구금으로 이어진 사건을 이미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축되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이민자의 입장에서 필자도 심지어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사건이 떠올라 언젠가는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겨났다.

그 원인은 2001년 당시 필자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북한 선교기금을 마련하여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약 1백만-2백만으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사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동포의 차원에서 특히 어린이를 위한 식량지원 사역에 동참한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에게 옥수수를 중국에서 구입하여 북한으로 들여보내고 이를 확인하고 정말로 아이들에게 배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3박 4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국제 식량구호 관계자와 월드 비젼 아시아 디렉터등과 함께 동행해 방문하고 왔다.

헌데 이 일이 두고 두고 화근이 되었다. 그 이후 해외 방문 후 미국으로 재입국 할 때마다 예외 없이 여권을 압수당하고 빨간 파일에 넣어 별도의 조사실 ( Secondary Room)으로 불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길게는 30분간 여러 조사를 받고 간신히 풀려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범죄 사실도 없는데 조사실로 불려들어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칫 다음 항공편을 놓칠뻔한 경우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경우는 밖에서 애타며 비행기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난감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었다.

이런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만약 이 상태로 출국을 하게 되면 다시 들어올 때 이전보다 심각하게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입국에 문제가 생기면 현재 직장에서도 문제시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자문도 구해보고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리 저리 연구해 보다가 이민법 전문가들이 올린 어느 유투브에서 내 경우에 딱 맞는 해결책이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즉 특별한 범법 사유 없이 자주 공항에서 입국시 정밀검사실로 불려가는 경우에는 이를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하는 제도가 있다는 정보였다. 미 국토안보부의 여행자 정보 수정요청 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가 시행하는 TRIP (Travelers Redress Inquiry Program)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제도였다.

이후 국토안보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이 프로그램 신청 코너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장문의 이 메일을 써서 담당관에게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북한 방문의 목적에 관한 보충서류를 첨부하여 보냈다.

이 때 마음 속에 내가 과연 이 문제를 바르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자칫 내가 보낸 정보가 오히려 나의 발목을 더 잡고 더 큰 의심으로 더 확실한 감시 대상이 되는게 아닌지 확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오히려 입국시 더 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크게 작용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만약 문제가 된다면 입국시에도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어차피 이 기회에 나의 신분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확인 차원에서라도 진행하는게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누구도 왜 나를 이렇게 별도로 취급하는지 아무도 말해준 바가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미국의 적성국가 출입으로 인해 대테러 관계 기관에서 감시 대상으로 분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솔직히 혹시나 긁어 부스럼을 키우게 되지는 않을까 의심도 들었다.

드디어 나의 청원이 정식으로 접수되었다는 담당관의 연락을 이메일을 통해 받았고 처리에 약 2달 정도가 소요된다는 내용도 알려주었다. 그 이후 기도하며 2달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다.

나의 케이스를 철저히 조사해 본 결과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 정식으로 출입국 시정 통보 (Redress) 번호와 함께 나의 모든 입국시 점검 자료를 삭제하도록 관계 기관에 지시했으니 앞으로는 통상적인 보안 검색 외에는 특별 조사는 받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만약 또 문제가 있다면 내 특별허가 번호를 알려주면 된다고 하였다.

드디어 24년간 끝없이 채워저 무겁고 나를 짓누르던 족쇄에서 비로서 해방이 된 홀가분한 순간을 느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을 변호사 도움이 없이 혼자서 해결해 냈다는 사실에 자부심도 들었다. 나아가 오랜 이민 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미행정부의 이민자들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 무절제하게 휘둘러대는 서슬퍼런 권력기관을 상대로 직접 이뤄낸 작은 성취이기에 내겐 더욱 자신감을 얻게해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이 사회를 살아갈 때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위축되지 말고 더욱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나가야 되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런 정보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모든 이민자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분명히 배운게 있다면 그 어떤 부당한 대우나 인권침해에 대해서 아무리 위협을 느끼더라도 반드시 항의하고 정의를 요구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부당한 억압 앞에 결단코 침묵하지도 물러서지도 말자!

Address

New York, NY
11357

Telephone

+19146711168

Website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Organization

Send a message to 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Shortcut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