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2026
로마( Rome)와 앗시시 (Assisi) (1)
배정웅 목사
Spiritual Director/ Chaplain
금주 일주일간 특별한 나들이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오랫 동안 마음 속에 품어온 나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인 로마와 앗시시를 방문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로마는 대단한 도시였다. 주변의 현대적 건물들 사이 사이로 2천년전 로마제국의 성벽과 그 잔재들이 곳곳에 공존하는 과거와 현대가 살아 숨쉬는 도시였다. 웅장한 콜로세움 옆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가운데 손꼽히는 현대적인 지하철 역이 지나가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 인파들로 발을 디딜 곳이 모자라고 그야말로 사람들로 치일 정도로 붐비는 곳이었다.
로마 시내 도로 곳곳에 그 옛날 로마시대의 도로 원형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여전히 사람들과 차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물론 작은 돌을 쪼개서 모자이크 처럼 이어온 로마식 도로들이 오늘날 현대적 아스팔트 길보다 사람과 차들의 통행에 조금 불편해 보이는 점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 광장 한 가운데 기둥 몇개와 돌덩이가 보존되어 있고 그 옆을 차들이 분주히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 돌덩이들이 옛날 극장 자리였으며 바로 그 장소에서 시저 황제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당한 자리란다.
이처럼 로마 시내 곳곳이 2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유적지 이긴 하지만 필자의 관심은 이런 화려한 로마제국의 잔재보다는 교외의 아피안 가도 곁에 들어선 초대 기독교인들의 아픔과 고통이 깊게 배여있는 카타콤에 더 관심이 쏠렸다.
카타콤은 지하 무덤으로 초대 기독교인들이 특히 네로 황제 시대를 거쳐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까지 약 300년 이상을 무자비한 박해와 처형으로 “예수 믿음”은 곧 모든 공민권 박탈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 압수와 사형에 처해지는 최악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선택한 초대 크리스챤들이 몸을 숨기고 비밀리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다.
필자가 방문한 아피안 가도 주변의 여러개의 카타콤 가운데 칼립토스 카타콤은 그 중 가장 크고 유명한 장소인데 시대를 따라 지하 4층으로 파 내려간 이 모든 카타콤의 총 길이를 계산하면 약 20 킬로미터에 이르며 동굴 벽을 따라 죽은 신앙인들을 뭍었는데 그 총 수가 약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살아나오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미로였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도피처로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내 생에 가장 숙연하고 숨 쉬기도 힘들만큼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이들은 결국 313년 이후에 기독교 공인으로 비로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피안 가도는 로마가 세계로 연결되는 고대 로마의 중요한 도로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바로 그 길이었다. 그 어느 지점에 예수님의 수제자 였던 베드로 사도가 박해를 피해 이길을 따라 로마를 탈출하려다 다시 도성향 향해 발길을 옮기는 주님을 만나 그 유명한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를 물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 때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이 나는 네가 도피하는 로마로 간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오던 길을 돌려 로마로 들어가 나는 십자가에 똑바로 박혀 죽을 자격도 없다고 선언하고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한다.
2000년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기독교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숭고한 희생과 피흘림 위해 서서히 다져지고 세워져왔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안일해진 오늘날 나의 믿음의 현주소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