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Agape Christian Healing Center Center for Spiritual Direction & Formation

12/28/2025

내 마음의 두레박 (10)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ion



2주간 연말 휴가를 내서 뉴욕 북부의 캐츠킬 (Catskill) 산자락에서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를 새롭게 맞이할 준비를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하기야 언제는 조용히 지나간 때가 있었으리요마는 유난히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혼돈스러운 2025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한 해 였다.

미국도 무리한 관세정책과 이민자 강경 추방정책으로 수 많은 이민자들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추방되었으며 지금도 합법적인 거주 허가를 받은 영주권자들과 귀화 시민권자들조차도 점점 조여오는 추방의 압박에 몸을 떨고 있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개개인들이 영끌을 동원해서 무리하게 자신의 능력 밖의 비싼 집을 구입하여 가계부채가 치솟아 파산의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비관적인 보도도 접하게 된다. 나아가 젊은이들이 빚을 끌여들어 무리하게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다 파산하는 수가 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들여오고 있다.

또 속도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쿠팡이라는 배송 업체의 비리가 세간의 화제를 집중시킨 한해이기도 하다. 신속, 쾌속 배달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이들의 무책임, 불성실,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기업윤리로 운영된 결과 오늘과 같은 수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도 나 모른채 타국에 숨어 그 사회적 책무를 유기한 채 반성 없이 버티고 있는 중이라 많은 원성을 사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나아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더더욱 극적 반전을 이루었다. 비상계엄과 그 여파로 사회가 극도의 불안 상태에 이르렀으나 그 책임자들의 파면과 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빠르게 안정을 이루어가고 내란에 가담한 자들이 하나씩 죄값을 받고 단죄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적으로 이런 현상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너무 조급히 자신이 능력 밖의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고 남보다 빨리 돈을 더 벌고 성공하고 권력을 더 크고 더 오래 누려보겠다는 과욕이 그 주범이란 사실이다. 그 결과는 개인의 파산이요, 회사의 파멸이요 국가의 퇴행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혼란과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겪으며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삶의 대원칙이 무시되고 있음을 거듭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가 그토록 중시하는 속도 보다는 방향이 보다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무시되고 있음이다.

좀 느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한 투자, 빚이 없는 투자가 우선이다. 좀 늦게 배달되더라도 노동자의 기본소득 보장과 건강과 인권을 배려함이 우선이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좀 손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직하고 합리적이며 정당의 정책과 철학에 부합되는 지도자를 신중히 선택하느 일이 보다 우선적이다.

결국 누가 정직하며, 누가 더 약속에 충실하며, 누가 더 신뢰받을 수 있느냐가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일보다 우선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무시되는 한 이런 사회는 겉은 화려하고 멀쩡한것 같은데 속은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도 결국 다시 되돌이키려면 열심히 달린만큼 더 멀리 더 힘들게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속도 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결국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기는게 역사의 순리이다.

새해에는 부디 우리 모두가 가끔 멈춰 서서 과연 내가 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속도와 방향조정을 통해 좀더 성숙한 나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12/22/2025

내 마음의 두레박 (9)
-평화의 조건-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성탄절이 몇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주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며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 평화의 초를 밝히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 세상에 평화가 오고 있는가를 다시 묵상해 보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져 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이 세상의 평화가 파괴되어가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왜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보다 폭력과 전쟁과 살상이 나날이 증가되어 가고 있는지를 거듭 묻고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이상적인 평화의 시대 도래를 “사자와 양이 함께 풀을 뜯으며 어린 아이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 모습”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거리가 멀게 이 세상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침략하여 파괴하고 협박하며 힘이 약한 상대는 맹독을 동원하여 물어뜯고 죽이려드는 세상이 아니던가? 어떻게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라고 거듭 묻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먼저 생각해 볼 전제는 사자와 양이 함께 풀을 나누어 먹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강자인 사자가 변화되어야만 평화로운 세상, 공존의 세상이 가능해 진다는 사실이다. 원래 양은 초식동물임으로 다른 변화가 없이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러나 사자가 육식 동물에서 초식동물로 바꾸지 않는 한 사자와 양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결코 이룰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고 죽지 않는 공존의 세상을 이루려면 독사가 자신의 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불가능하다. 또한 독사는 자기 덩치보다 몇배가 큰 상대도 그 큰 입을 벌여 삼켜버리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 기다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원리로 강대국이 약소국에 양보하지 않고 먼저 침략하고 수탈하는 채로 휴전을 강요하는 한 결코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없다. 그렇게 협박과 강요에 의해 할 수 없이 휴전을 맺은들 이를 진정한 평화라 볼 수 있겠는가?

사자도 독사도 자신의 가진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 폭력이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양과 어린이와 함께할 수 없다.

힘을 가진 권력자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시도하고 양과 어린이와 같은 선한 국민들을 총칼을 동원해 억압하려는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비성서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한 그 어디서도 평화는 단지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으리라.

더구나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같은 편이라고 무조건 이런 세력들을 옹호하고 지지해온 맹목적 동조세력들도 이 기회에 철저히 자기 반성과 거듭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대형, 큰 힘을 맹신하는 세력들을 옳고 바르다고 그 숫자만 보고 맹종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한 사자와 독사들을 통해 세상은 더욱 파괴되고 평화는 멀어지고 말리라. 이는 삼척동자라도 아는데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게 왜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한국의 한 택배회사가 너무나 불리한 근로조건으로 적지 않은 숫자의 노동자들을 사망으로 몰았다는 사실에 온 국민들이 분노하는데도 자신들은 전혀 잘못이 없고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책임을 발뺌하는 한 힘없는 양과 어린이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과 같이 풀을 뜯거나 그 구멍에 손을 넣을 수도 없음이 자명하다.

최근 디즈니 다큐멘타리를 (The End of an Era) 통해 공개된 사실이 세간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유명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약 1억 9,700만 달러 한화로 약 2800억원 이상을 자신을 위해 일해온 트럭 운전사, 댄서, 밴드 멤버, 케이터링 팀, 조명및 음향기술자, 보안 요원 등 스탭에게 보통 업계에서 지급하는 특별 보나스 보다 10배 넘는 통큰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결단으로 심지어 트럭 운전자 약 50명에게 1인당 10만 달러, 한화로 1억 400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단순히 돈만 보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쓴 감사편지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나아가 작은 도시에서 공연할 때마다 무료급식을 위해 수만명의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금액을 꾸준히 쾌척해 왔다고 한다.

힘을 가진 강자들이여, 사자와 독사가 먼저 변화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평화는 결코 달성하기 어려운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자. 자신의 그 대단한 권력, 재산, 명예, 지식으로 약자를 돕는데 기꺼이 사용하며 그들을 억압하지 않을 때 비로서 평화는 단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아울러 “칼을 쓰는자는 칼로 망하리라” 는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빛으로 오신 겸손하신 그 분의 말씀을 귀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닮아가는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12/18/2025

내 마음의 두레박 (8)
-성공하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성공하려면 아침에 일어나 먼저 침대부터 정리하십시요” 이 유명한 말은 미국 퇴역 4성 해군 제독이었던 윌리엄 맥레이븐 (William H. McRaven) 장군이 2014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졸업식의 축사 가운데 강조한 내용이었다. 그는 37년간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로 복무하는 동안 그가 깨달은 삶의 핵심 교훈을 정리하여 강조한 내용이다.

2년전 필자가 어느 유투브에서 이 제목을 대면하고 내용을 파악한 순간 무릎을 탁치고 공감하였다. 소중한 가르침이라 판단하여 즉시 실천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하필이면 많은 훌륭한 명언과 교훈들이 많을텐데 왜 침대정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따를 수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단순한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단순히 청결유지 이상으로 큰 심리적 이익과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강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하루에 일어나 먼저 침대부터 정리한다는 말은 자신의 하루 첫번째 과제를 완수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성취감이 자신의 하루에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부심과 더 나은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하여 필자도 목표를 정하여 이 작은 과제를 묵묵히 실천해 보기로 작정하고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과연 이 작은 일로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작정했다.

그 결과 내 삶에 일어난 변화는 다음과 같다.

한달이 지난 후 점차 내 마음의 혼란한 침상도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점차 더 세미한 일들까지 관심이 집중되고 정리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침대를 꾸준히 정리하고 하루를 시작하니 내 방에 너무 정리가 않되고 흐트러진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소를 자주하게 되었고 옷장도 흐트러지고 아무렇게나 널려진 옷들을 하나 하나 제자리에 걸고 깔끔하게 정리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의 시간관리도 달라졌다. 좀더 철저히 아주 사소한 자투리 시간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약속 시간도 철저히 관리하고 그 결과 시간을 어기는 실수들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면 오늘 일기예보에 눈이온다하면 내일 아침 출근 시간에 눈을 치우는데 적어도 30분 정도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고 아침 기상시간 시간을 30분 일찍 일어나도록 시간을 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 다른 동료들은 당연히 30분 이상 지각을 하였는데 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정시출근을 찍게 되었다.

또다른 유익은 재정적인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점점 나의 작은 지출에도 신경을 더 꼼꼼히 쓰게 되어 인터넷 상에서 자동적으로 빠져나가는 불필요한 지출이 있음을 발견하여 사전에 차단함으로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나의 삶이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주차시간 위반이나 신호위반이 사라져 많은 벌과금이 사라졌고 같은 수입이지만 쓸데없는 지출이 줄어들고 꼭 사용해야될 곳에 적절히 내 수입이 사용되는 결과 즉 재정적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침대정리는 이어 내 마음 속의 흐트러진 침대를 들여다 보고 흐트러진 부분들을 차곡 차곡 정리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음이 정리 정돈되니 조급함도 줄어들고 충동적이 언행이 자제되고 마음의 평화도 점차 찾아오게 되어 훨신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큰 유익은 이제부터는 내가 마음 먹은데로 내 몸을 움직여 행동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과 그로 인한 놀라운 성취감을 이뤄내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런 믿기 어려운 놀라운 결과가 내 삶에 점점 정착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하루 일과 중 TV 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기도와 묵상과 독서와 글쓰기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거르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실천하니 건강도 많이 개선되고 몸도 훨씬 가뿐해진 느낌이다. 당뇨약도 빠짐없이 챙겨먹고 음식도 더 세밀하게 조정해 섭취하니 몸의 여러분야에서 그 효과가 느껴지고 있다.

즉 내가 해야할 일은 더 철저히 실천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더욱 세밀하게 통제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소한 원칙이라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고 실천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원해도 소위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빌려 설명하자면 "주의, 집중력 결핍증(ADHD)"이나 " 강박적 충동적 증세 ( OCD)" 같은 사람들의 경우 전자는 작은 일에 즉 디테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그 일을 끝낼 수도 없다.

이런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경우는 이 방식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비 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병적인 이들은 극단적이다. 그 결과 아무리 원해도 침대를 아예 정돈할 의지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거나 너무 열심히 침대와 주변정리에 모든 자신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하게 되는 서로 다른 방향의 병적상황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는 특수한 예외이기 때문이다.

강박증세의 환자는 너무 세밀하고 작고 즉 디테일한 일에 관심을 과도하게 드러내고 그 작은 하나의 나무에 목숨을 걸고 지키려 과도하게 집착하여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증세이다. 그래서 병이며 그래서 의사의 처방과 필요하면 약도 사용해서 그 증세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오늘 나의 삶은 2년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성취적이고 결정적이고 건강해졌다. 이제는 마음 먹은대로 몸이 예전보다 훨씬 순종적으로 따라준다. 이 믿기어려운 놀라운 변화가 아침에 일어나 5분간 침대정리를 시작하여 일어난 긍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효과들이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되다”

“악마는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손해볼게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주저하지 말고 침대부터 정리해보자.

12/14/2025

슬기로운 병원생활 (46)
-열린 마음의 중요성-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채플린의 우선적 목표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현재 격고 있는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공감해 주고 그 고통의 순간을 지혜롭게 잘 통과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하는데 있다.

따라서 채플린이 얼마나 자신의 선입견과 그로인한 섣부른 판단과 정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고 그 결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이 현재 체험하고 통과하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느냐 즉 진정한 함께함을 (presence)실천에 나갈 수 있느냐에 그 사역의 초점이 맞춰지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필자가 병원에서 거듭 경험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 나의 정체성은 한인, 장로교 목사요 한국식 예의범절, 어쩌면 많은 부분이 유교적 전통을 무의식적으로 물려받고 뼈속 깊이 새겨져 있는 한 채플린이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무리 나의 종교적 문화적 제한을 벗어나 폭넓고 다양하게 열린마음으로 환자들과 가족들과 다양한 전문직 직원들을 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불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젊은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을 대할 때 이쪽에서 먼저 예의를 갖춰 (?) 인사를 하면 보통은 저쪽에서도 형식적으로라도 인사를 받아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좀 예외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이쪽에서 노력을 해도 도무지 대꾸도 없고 심지어 외면하는 사람들도 드물긴 하지만 경험하게 된다. 환자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마나 내가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내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런 행위들이 용납되지 않아 분노하고 힘들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되돌아 보면 이 미국이란 사회는 특히 뉴욕은 다양한 민족, 가치관 삶의 배경을 가진 채 서로 섞여 살아가는 특수한 지역이 아니던가? 따라서 내가 인사 한다고 그들도 반드시 나의 방식과 요구대로 인사를 되돌려주어야 바른 인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깨달음이었다.

이는 어쩌면 나의 고정된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틀리고 나쁜 사람이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하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물음이었다.

아무리 채플린 교육과정에서 이런 문화적 종교적 다름을 뛰어 넘어 이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라는 훈련을 받았어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무의식 적으로 (비록 이론적으로나 의식적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나의 자아를 붙들고 있는 강력한 저항이 드러나고 있는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종교적 문화적 또는 그에 따른 가치관이 틀리기 때문에 포기라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단단한 정체성 위에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자세 곧 진정한 공감의 자세를 (compassion )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 문제에서조차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로 작정했다. 즉 아무리 인사해도 대꾸도 없는 사람들은 나도 너무 신경쓰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스스로도 너무 긴장하거나 또 내가 원하는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때로는 나의 가치관을 고집하고 강요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이 집착에서 벗어나 나와 너 모두가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아래 살아가고 있는 너무나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외면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니 이처럼 편할 수가 없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내 기준으로 바뀌도록 강요해서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도록 바꿀 수 없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11/30/2025

내 마음의 두레박 (7)
-말과 삶의 일치가 중요한 이유-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어제는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오래전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한 목사님을 뉴저지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는 80년대 초에 신학교를 졸업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30대 젊은 청년이었던 우리가 70이 넘어서야 비로서 해후하게 되었지만 서로 머리가 희어진 노년의 모습으로 40년 정도 세월은 보낸뒤 이제야 뒤늦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반갑고 기뻣다. 그간 이분은 한국에서 성실하게 목회하며 많은 이웃들을 돕고 그 선한 영향력을 한국과 여러 나라들의 이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유감없이 발휘한 누가봐도 소위 성공적인 목사이었다.

그 유명세 (?) 때문인지 뉴져지 친척집을 잠깐 방문한 사이 번개 모임을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 뉴져지 뿐만 아니라 동부지역 멀리 심지어는 보스톤에서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이미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지 거의 10년가까이 지났지만 대단한 열정이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친척이 사는 아파트 옥상 펜트하우스를 잠시 빌려 가진 모임은 특별한 형식이 없이 그분의 평소 목회 스타일대로 자유로운 신앙생활 관련 질의와 응답시간으로 약 2시간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 뿐만 아니라 필자도 그 대화를 통해 큰 은혜가 되었다.

아무런 형식도 미리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던져진 다양한 질문들에 필자뿐만 아니라 참석자들 모두가 큰 감동과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처럼 기독교에 대한 나아가 목회자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끊임없이 가해지는 시대에 그의 이처럼 사람을 끌고 존경받는 비결이 무엇일까를 영성지도를 전공한 목사의 한 사람으로써 사적인 관계를 떠나 진지하게 물어보는 계기를 제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진솔했다. 소위 다른 대형교회 목사와는 다르게 전혀 권위의식이 없었고 그 어떤 즉석 질문에도 담담히 답변해 나갔는데 그 모든 응답에서 자신의 삶과 경험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답변은 (또는 공식적인 예배의 순간에서 설교를 통해서도) 전혀 가식이 없이 어떤 성경말씀을 전달할 때 그동안 자신도 그 문제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고민했으며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기에 단순히 이론이나 머리에서 나온 응답과는 차이가 있는 실제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지난 6년간 암으로 투병하며 그 힘든 과정에서 어떻게 은퇴 이전에 못지 않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데 큰 감동이 전해졌다.

그는 이런 투병과정에서 불평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하루 하루 연장해 살아가고 사역해 나간다는 설명에 여러 명의 동일한 투병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참석자들이 큰 감명과 힘을 얻었노라고 고백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다시 필자의 지속적인 관심사인 영성지도의 측면에서 큰 깨달음이 느껴졌다. 결국 한 목회자나 어떤 크리스찬의 삶도 자신의 말과 그에 입각한 실천 즉 말씀과 삶의 일치가 곧 그 사람이나 단체의 영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는 이해였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조롱받고 버려지고 짓밟히고 있는가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즉 생명의 말씀, 구원의 진리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삶과 실천이 불일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배척과 외면과 그에 따른 쇠퇴의 근본 원인은 목회자를 위시해서 각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믿고 따르고 입으로 강조하는 복음에 문제가 있지 않고 말 따로 행동 따로 분리된 모습에 기인한다고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은 달변가나 고학력자들의 유창하고 번드르한 말로 변화되지 않는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말들은 유능한 선동가를 양산할 따름이다. 이들은 오히려 세상을 크게 오도하고 시각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구덩이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 세상은 자신의 말에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을 통해 변한다. 지금도 세상은 이런 사람을 목마르게 갈구하고 있다.

결국 한국 교회의 영성의 쇠퇴는 진실성이 결여된 그리스도인들의 분리된 삶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회 밖의 사람들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비웃고 조롱하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교회가 거룩과 진리와 섬김을 강조해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회복은 무너진 영성 회복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영성회복은거짓된 삶의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내어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무리 손해와 큰 책임이 뒤따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려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결국 영성회복은 진실성 회복이라는 선결과제를 결코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할 때 예수께서 강조하신 바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우리 모두 거짓된 삶을 회개하고 철저히 거듭나야할 때이다.

11/24/2025

내 마음의 두레박 (6)
-어디서 행복을 찾을까?-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오늘은 휴무일,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무슨 깨달음이 떠오르는지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웬지 모르게 커피를 한잔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내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기다리는 시간이 잔잔히 흐르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과 더불어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오늘이라고 다른 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인데 왜 갑자기 이런 기분이들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오늘 아침 시간에 1 학년짜리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아이들 엄마 아빠가 시간이 되는대로 걸어서 15분 거리의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오늘따라 이 임무가 집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떨어졌다.

이런 행운(?)이 자주 내게 주어지지는 않지만 오늘따라 내가 집에 있는 날이고 또 부모들이 바빠서 내게 요청이 왔기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귀찮은 일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시간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이 시간을 통해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친밀감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앞에는 다른 부모들도 비록 서로 다른 피부와 생김새가 각각 다르지만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오는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 짧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과 행복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헌데 자세히 보니 오늘따라 손자의 얼굴이 침울하고 슬퍼보이기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손자가 답하기를 동생이 학교에서 데려온 집게 한마리를 2주간 자기 집에서 돌보게 되어 너무 좋아하고 이름까지 붙어주고 잘 돌보아 주었는데 이번 주에 학교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소식에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말했다.

아침에 엄마 품에서 서럽게 울었단다. 자기 소유의 모든 인형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시키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눈가가 불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 심지어 자기 집에서 몇주간 돌보던 그 작은 집게 한마리까지 아끼고 사랑하고 헤어지기 싫어하는 그 부드러운 마음이 바로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칭찬하신 그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8:3)

동시에 오늘 이 시대를 반추해 볼때 어른들이 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와 혼돈을 주고 있는지도 생각이 이르었다. 지금도 지구촌 여기 저기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민간인과 수 많은 어린이들이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야만적인 시대를 우리가 어린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리 겉으로 정의를 부르짖고 평화를 내세워도 이는 켤코 천국과는 무관한 비생명, 비평화적이며 잔인한 어른들의 무자비한 모습을 그 천진하고 순박한 아린이들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가자지구의 어린이들,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들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시대 어른들은 이런 여리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어떤 공포심과 파괴와 혼돈을 심어주고 있는지? 이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지 않는 강팍한 마음 속에 어떻게 천국이 임할 수있기를 기대하겠는가?

오래전 성경말씀에는 천국의 이상적 모습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사야 11:8) 이처럼 어린이는 항상 천국의 이상적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천국의 실현은 거창한 구호나 이데올로기적 충성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타자를 향한 -심지어 미약한 동물에게까지도- 사랑과 동정심을 함께 나눌 수있는 바로 그 현장이 아닐까? 바로 그 때 우리의 마음에도 천국이 세워지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과 만족한 삶이 싹트고 자라나지 아니겠는가?

11/20/2025

내 마음의 두레박 (5)
-약자의 수난시대를 살아가는 자세-

배정웅 목사
Chaplain and Spiritual Director



요즘 세계 어느 나라에 산다한들 요동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마음이 편할 날이 있겠으리요마는 이 미국 땅에 살아가는 일도 하루 하루 만만치 않은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민자라는 이 사회 소수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연일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고 무리하게 체포하고 추방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 아래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는 서류미비자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취득한 영주권자 심지어는 시민권자들에게까지 의심의 눈총을 따갑게 보내고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고 빈틈만 보이면 추방할 구실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주권자도 과거의 어떤 경범죄 사실이라도 확인되면 범죄자로 추방하려는 강경정책이 이미 실시중에 있어 여러 한인들도 입국시 거부되어 추방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음을 한 한인 과학자의 입국과정에서 체포와 구금으로 이어진 사건을 이미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축되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이민자의 입장에서 필자도 심지어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사건이 떠올라 언젠가는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겨났다.

그 원인은 2001년 당시 필자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북한 선교기금을 마련하여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약 1백만-2백만으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사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동포의 차원에서 특히 어린이를 위한 식량지원 사역에 동참한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에게 옥수수를 중국에서 구입하여 북한으로 들여보내고 이를 확인하고 정말로 아이들에게 배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3박 4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국제 식량구호 관계자와 월드 비젼 아시아 디렉터등과 함께 동행해 방문하고 왔다.

헌데 이 일이 두고 두고 화근이 되었다. 그 이후 해외 방문 후 미국으로 재입국 할 때마다 예외 없이 여권을 압수당하고 빨간 파일에 넣어 별도의 조사실 ( Secondary Room)으로 불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길게는 30분간 여러 조사를 받고 간신히 풀려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범죄 사실도 없는데 조사실로 불려들어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칫 다음 항공편을 놓칠뻔한 경우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경우는 밖에서 애타며 비행기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난감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었다.

이런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만약 이 상태로 출국을 하게 되면 다시 들어올 때 이전보다 심각하게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입국에 문제가 생기면 현재 직장에서도 문제시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자문도 구해보고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리 저리 연구해 보다가 이민법 전문가들이 올린 어느 유투브에서 내 경우에 딱 맞는 해결책이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즉 특별한 범법 사유 없이 자주 공항에서 입국시 정밀검사실로 불려가는 경우에는 이를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하는 제도가 있다는 정보였다. 미 국토안보부의 여행자 정보 수정요청 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가 시행하는 TRIP (Travelers Redress Inquiry Program)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제도였다.

이후 국토안보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이 프로그램 신청 코너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장문의 이 메일을 써서 담당관에게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북한 방문의 목적에 관한 보충서류를 첨부하여 보냈다.

이 때 마음 속에 내가 과연 이 문제를 바르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자칫 내가 보낸 정보가 오히려 나의 발목을 더 잡고 더 큰 의심으로 더 확실한 감시 대상이 되는게 아닌지 확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오히려 입국시 더 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크게 작용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만약 문제가 된다면 입국시에도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어차피 이 기회에 나의 신분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확인 차원에서라도 진행하는게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누구도 왜 나를 이렇게 별도로 취급하는지 아무도 말해준 바가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미국의 적성국가 출입으로 인해 대테러 관계 기관에서 감시 대상으로 분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솔직히 혹시나 긁어 부스럼을 키우게 되지는 않을까 의심도 들었다.

드디어 나의 청원이 정식으로 접수되었다는 담당관의 연락을 이메일을 통해 받았고 처리에 약 2달 정도가 소요된다는 내용도 알려주었다. 그 이후 기도하며 2달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다.

나의 케이스를 철저히 조사해 본 결과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 정식으로 출입국 시정 통보 (Redress) 번호와 함께 나의 모든 입국시 점검 자료를 삭제하도록 관계 기관에 지시했으니 앞으로는 통상적인 보안 검색 외에는 특별 조사는 받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만약 또 문제가 있다면 내 특별허가 번호를 알려주면 된다고 하였다.

드디어 24년간 끝없이 채워저 무겁고 나를 짓누르던 족쇄에서 비로서 해방이 된 홀가분한 순간을 느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을 변호사 도움이 없이 혼자서 해결해 냈다는 사실에 자부심도 들었다. 나아가 오랜 이민 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미행정부의 이민자들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 무절제하게 휘둘러대는 서슬퍼런 권력기관을 상대로 직접 이뤄낸 작은 성취이기에 내겐 더욱 자신감을 얻게해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이 사회를 살아갈 때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위축되지 말고 더욱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나가야 되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런 정보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모든 이민자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분명히 배운게 있다면 그 어떤 부당한 대우나 인권침해에 대해서 아무리 위협을 느끼더라도 반드시 항의하고 정의를 요구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부당한 억압 앞에 결단코 침묵하지도 물러서지도 말자!

10/27/2025

슬기로운 병원생활 (45)
-기드온 성서협회의 활발한 활동-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비록 미국 안에서의 채플린은 언제 어떤 환경 아래에서도 동일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각각 다른 현장에 투입되지만 각 병원의 특성과 강조점에 따라 그 사역의 내용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호스피스 전문 병원이나 단체는 그 사역에 죽음에 곧 임박한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는 일에 중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그 방문 대상도 병원, 가정, 요양원 등 다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운전하며 이동하는데 보내게 된다.

또 병원의 특성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 내의 재향군인들을 위한 병원인 VA (Veterans Affairs) 병원은 전쟁이란 특별한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에 남겨진 상처를 치유하는데 그 촛점에 맞추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환자들 가운데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증세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타 일반 병원 보다 대면할 확률이 높다.

나아가 이 병원의 설립 목적이나 성격이 연방정부 차원의 재향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이다 보니 채플린도 공무원의 신분으로 그 규정을 지키며 허용된 범위 안에서 활동하게 된다.

또 일반 병원 가운데도 종교적 법인과 비종교적 법인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은 가톨릭 재단의 병원으로 아무래도 가톨릭 환자들의 비중이 높다보니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당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개신교 계통의 종교법인이라면 예를 들면 침례교 계통의 병원에서는 좀더 활발한 병원내 예배나 찬양등 다양한 활동등이 강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 가운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용되는 사역이 있는데 이는 기드온 성서협회의 성경보급 사역이다. 이 단체는 기독교 기관으로 병원, 호텔, 교정시절, 군부대 등 여러 공공기관에 무료로 성경을 보급하는데 사명을 수행하는 특별한 단체이다.

필자의 병원에서도 비록 가톨릭 병원이지만 이를 적극 활용한다. 주로 침상의 환자들 뿐만아니라 장시간 대기실에서 수술 후 환자를 기다려야 하는 가족과 친척들 나아가 방문자들을 위해 기드온에서 제공한 무료 성경을 곳곳에 배치해 두고 이들이 언제든지 가져다가 보고 소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실 환자들도 때로는 몇일 또는 몇주간을 침상에서 보낼 때 너무 무료하고 삶의 의미에 혼돈이 올 때 이 성경만큼 읽기 좋은 기회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하여, 이들이 언제든지 성경을 요구하면 제공할 준비를 늘 갖추고 대비하게 된다. 가톨릭 병원임에도 이런 성경보급 사역 만큼은 개신교 단체인 기드온의 힘을 빌려 지속해 나가고 있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기드온의 협조를 통한 성경보급 사역은 약 3개월 정도마다 재고가 비면 다시 기드온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양을 주문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빈 서고를 채워주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귀찮아 하지도 않을뿐 아니라 늘 웃는 모습으로 그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무료로 성경을 채워주고 간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하며 또 그들의 사역의 대의에 공감하여 우리 부서에서도 가끔 약간의 재정적 지원으로 보답하기도 한다. 필자도 역시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금씩 후원을 하기도 한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이들은 그 많은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기쁘게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더 많이 더 빨리 더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성경이 보급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은 진정한 치유와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도 폭넓은 의미의 채플린이란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비록 이 땅에서 고통받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종이로 인쇄된 성경말씀이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영적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려는 헌신적인 노력과 자세를 볼 때 필자 자신도 늘 감동을 받게 된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로마서 10:15)

10/23/2025

내 마음의 두레박 (4)
-이제는 말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리라” (마태복음 5장 37절)

오늘도 휴무일, 조용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내 마음 속에 두레박을 조용히 내리고 기다려 본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쇼팽의 녹턴과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조용히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 아침 내 마음의 우물속 깊은 곳에 떠오르는 여러 깨달음들을 주의 깊게 길어올려 본다. 먼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안하지 않음이 느껴졌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하수상하고 요란스럽기 때문일까?

이 미국 땅을 살펴보면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 마치 누가 작정을 하고 고요한 세상이란 우물을 휘져어 잔뜩 분탕질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관세로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극도의 자국이기주의로 세상의 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의 민주주의 모범이라던 미국이 이제는 내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태까지 이르고 있다.

서민들은 나날이 솟구치는 물가의 압력에 하루 하루 숨 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왕은 없다” 시위가 미국 여러 주요 도시에서 7백만명 이상이 모이는 미 역사상 최대의 전례없는 항의집회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내세운 구호 가운데 “한국이 옳았다/Korea got it right.”는 탄핵 구호도 보인다고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나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그칠줄모르고 파괴와 살상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내 조국 안에서도 내란 청산으로 연일 조용할 날이 없는 듯 하다. 더구나 미국의 관세 폭탄과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현금 선불 조건을 두고도 연일 반대 데모가 진행중인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도 한국교회가 과거의 불법로비 사건에 연루되어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이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조국을 염려하는 한 사람으로써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많은 경우 기독교는 사회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며 마치 맛 잃은 소금 처럼 길거리에 버려지며 여기 저기서 짓밟히고 조롱을 당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현실이 더욱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다.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포함하여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신뢰받는 교회로 다시 변화될 수있을까를 거듭 물어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늘 잃고 묵상한 말씀은 큰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리라” (마태복음 5장 37절) 이 말씀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 가운데 예수께서 거짓 맹세에 관한 가르침을 강조하시는 가운데 그 결론으로 주신 말씀이었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가능하면 맹세하지 말 것이며 만약 맹세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되면 결코 헛된 맹세 즉 거짓된 맹세를 피하라는 말씀이다. 거짓된 맹세는 결코 선에서 오지 않으며 (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정직하지 못한 맹세는 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너무 쉽게 거짓 맹세나 증언을 내 뱉는다는데 있다. 소위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 까닭에 소위 말하는 갓톡 (God talk)에 함몰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헛되게 부르지)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 가운데 3번째 계명을 심각하게 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런 얄팍한 행위를 직시하시고 이는 결코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악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강하게 지적하셨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은 결코 거짓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는 말씀에서 이미 강조되어 있듯이……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시 회복하는 일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는 정직한 그리스도인 상을 회복하는데 있다. 많은 중요한 과제가 있겠으나 적어도 이 하나만 제대로 지켜도 말만 그럴듯이 앞서고 그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는 위선적 사람들이라는 불신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말씀 그 어디를 보아도 거짓을 장려하거나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 맹세나 증언을 옹호하고 눈감아 주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악에 속했다는 명백한 반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운운하고 선을 가장해도 이런 거짓 증언이나 맹세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피할 수 없는 악의 무리에 이미 발을 깊이 들이고 한 편임을 자인하는 자기 고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혼탁한 시대 맛 잃은 소금과 어두워진 빛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여러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가장 시급한 과제중 하나는 정직한 삶을 시작하는데서 부터 비롯된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자신의 말을 예, 아니오라고 책임지고 선언할 수 있는 진정한 영적 용기와 책임성, 결단력을 강하게 보여줄 것을 요구받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말자.

“정직성 없는 영성은 허상”임을 기억하자. 이 간단한 원리야 말로 쉽게 빠져드는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10/09/2025

내 마음의 두레박 (3)
-결혼 40주년을 맞이하여-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오늘은 필자의 결혼 40주년 기념일이다. 오늘부터 12일간 특별휴가를 내어 지난 40년을 돌아보며 아내와 함께 모처럼 여행도 다녀올 계획이다.

돌아보니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난다. 40년전 오늘, 1985년 10월 9일은 한글날이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나이 30줄이면 노총각이라 놀려대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당시 신학대학원 3년 졸업반이었고 이제 몇달 내에 졸업하고 전도사로 어디든 파송 받아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3년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외롭게 고군분투하며 학업을 어찌 어찌 마지막 단계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전임전도사로 부임해 간다치더라도 한 가정을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전 같은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함께 일하던 현재의 아내가 부족한 필자를 믿어주고 결혼을 서약하고 드디어 40년전 오늘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선포하신 그 위대한 날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당시에 우리 부부의 걱정은 30살 넘어 결혼하게 된 우리가 과연 아이를 잘 낳고 그 아이들이 결혼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살아 보게될까라는 걱정이었다. 오늘날은 만혼이 대세인지라 쓸데없는 걱정 같았지만 당시에는 친구들이 30이전에 결혼이 대세였기 때문에 꽤 이유있는 걱정이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우리 부부가 결혼 2년만에 첫 딸을 낳고 3년뒤 미국 유학시절 2째 아들을 낳아 지금은 모두 결혼하고 첫 딸은 아들 둘을 둘째 아들은 아들 하나를 낳아 어였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대견스런모습을 보게될 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돌이켜 보니 미국 땅에서만 벌써 37년을 살아왔다. 언어도, 문화도 목회경험도 모두가 서툴기 그지없는 신참 목회자 생활을 거쳐 그 거칠고 험한 이민목회를 20년간 거치며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도 이게 목회자의 길이려니 이해해 주고 받아준 아내의 묵묵하고 성실한 뒷받침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험란한 길이었다.

같은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탄탄한 신학적 이론과 체계적인 지식으로 남편의 목회와 한글학교 운영을 도왔다.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남편의 안내자와 영적 순례길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마치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영혼의 안내자 베아트리체와도 같이 험란한 여정에서 때로는 남편이 방황하고 헤맬 때 손을 꼭 붙잡고 그 위험한 길을 함께 인내하며 지혜로 헤쳐나갈 수 있는 쏘울메이트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과정이었다.

우린 목회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바른 길, 바른 목회를 감당하려고 기도하며 그 원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어려움과 물질적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었지만….

그 포기할 수 없는 목회원칙 또는 목회철학이란

첫째, 아무리 어려워도 다른 교회에서 싸우고 갈라져 나온 교인들과 함께 교회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이는 유명한 신학자 리쳐드 니버의 선언에 기초한 목회원리였다. 그는 “교회의 분열은 교회의 윤리적 패배이다”는 선언이었다. 하여, 교인들의 이합집산이 너무나 당연하게 발생하는 특히 이민교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선언에 기초한 목회실천은 어쩌면 지극히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목회방식은 새로운 지역에서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이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고난의 길, 좁은 문을 통과하기로 작정하고 달려든 것과 다름 없는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전혀 알지 못하던 지역에서 아는 교인 한명도 없이 기도하며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목사가 격려차 찾아와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불소시개도 없이 맨땅에 불을 피우시려는가”라며 웃으며 우리를 놀려주기도 하였다.

둘째는 이민목회의 가장 큰 유혹과 각자에게 절실한 필수요소인 영주권을 통한 교인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다만 같은 동포 입장에서 영주권이 필요한 사람들을 할 수 있으면 도우려 최선을 다하지만 법을 어겨가며 거짓된 방식으로 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지켜나갔다.

이민교회에서 영주권을 목적으로 이교회 저교회를 돌아다니며 자격이 부합되지 않음에도 목회자에 무리한 요구를 들이밀고 관철이 되지 않으면 목회자를 비난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너무 비일비재하기 마련이었다. 약한 교회에서 단 한명의 교인이 아쉬운 마당에 이들을 뿌리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으나 우린 이 원칙에 있어서는 결코 한번도 타협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서 교인들이 소문을 듣고 한명 두명 모여들어 5년 뒤에는 완전히 무에서 제법 그럴듯한 이민교회가 형성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 교회에 찾아든 교인들 가운데 80%가 처음으로 교회를 밟은 초신자들이었고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첫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런 목회도 아내는 남편의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하는 교회를 묵묵히 지원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참으로 큰 희생과 헌신이었다. 그런 경제적으로도 힘든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공부를 이어가며 매일 신학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이런 배경을 통해 아내도 자신의 교육배경과 전문성을 살려 미국장로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고 (당시 필자가 속한 한인교회는 지금과는 달리 여성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을 때였다.)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CPE ( Clinical Pastoral Educ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채플린과 이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수퍼바이저/교육자 자격까지 획득하게 되었으며 이는 당시 미국 동부 전체에서 유일한 한인 여성 수퍼바이저였다.

40년간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때로는 생각이 달라서 서로 다투기도 하였고 성격차이로 인해 서로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 받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아담에게 주신 돕는 베필이 되어주었고 함께 기도하며 그 어려운 순간들을 인내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가능케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결과였음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다. 때로는 느리고 답답하고 완고한 원칙주의자로 보일 수 있는 남편의 부족한 면을 받아주고 인내하고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고 잡아준 아내가 아니었다면 오늘까지 결혼생활을 이어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큰 빚을 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앞으로 우리 부부가 얼마나 더 살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생을 더욱 알찬 열매를 맺으며 후대들에게 조금이라도 우리의 삶의 작은 족적을 남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Theos, Gracias!
하나님, 감사합니다!

10/04/2025

슬기로운 병원생활 (44)
-채플린의 고유영역-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병원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전문성을 활용하여 함께 힘을 합쳐 환자를 치유하고 그 가족들을 돌보는 전문가 연합체 (inter-diciplinary)이다. 이런 이유로 서로 필요하면 다른 전문가의 심도 깊은 추천제도을 자주 활용한다.

예를 들면 의사들 사이에도 환자가 보다 전문적인 암 전문의의 특별진단이 필요한 경우, 때로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 필요가 있는 경우, 나아가 신장전문의 등등….. 필요한 특별검진 추천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분야의 검진을 통해 환자를 종합적으로 치유해 나간다.

채플린도 마찬가지다. 종종 담당 간호사나 의사들의 특별 방문 추천을 받게 되면 우선적으로 그 환자를 방문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각 전문 분야 담당자들의 전문영역의 경계선 설정이 대단히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의학 지식으로 무장되지 않은 단순한 신학이나 상담지식으로 훈련받은 채플린의 고유한 영역이 무엇이며 의사나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의 타 분야 전문가들과의 경계선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병원의 모든 직종은 그 나름대로의 업부분야 지침 (Job Description)이란게 존재한다. 특히 채플린의 경우 “환자나 가족이나 때로는 직원들의 영적, 정서적 (감정적) 필요에 적절히 응답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라고 우선적으로 그 경계선을 설정해 주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하여, 채플린이 이런 자신들만의 고유한 업무 규정을 벗어난 그 어떠한 행위나 시도도 타 전문 영역에 대한 경계선 (boundary) 침범으로 간주되어 잘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일전에 한 동료 채플린이 어떤 간호사에게 환자를 대하는 문제를 조언하고 간섭하는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어 해당 부서의 매니저에게 항의를 받고 징계를 받고 해고 위기까지 도달한 경우가 있었다. 물론 직원 사이에 일반적인 조언까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는 그들의 전문성 영역에 대한 조언이라 간주되어 간호사들의 큰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채플린의 고유영역을 지킨다는 사실이 어떤의미일까? 이미 설명한 대로 영적, 정서적 차원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영적 영역은 그 어떤 타 전문가들도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채플린만의 고유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서적 영역은 병원의 규정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가 있다. 어떤 병원은 사회복지사도 사회적, 정서적 영역이란 범위가 주어지기 때문에 채플린과 사회복지사가 가장 비슷한 업무를 다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병원에서는 채플린과 사회복지사가 한 부서로 편성되어 함께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적 영역은 오로지 채플린 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된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렇다면 채플린 만의 지극히 고유한 영적 영역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떤 범위를 다룰까?

첫째는 종교의식이다. 환자들 가운데 수술실에 들어가지 직전이나 임종의 순간에 채플린과 기도를 한뒤 수술을 받거나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기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가 있으면 채플린이 우선적으로 방문하여 적절한 종교의식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나눔으로 이들이 마음의 평안을 소유하고 수술이나 죽음에 임하게 된다.

사실 많은 환자들이 대수술을 앞에 두고 과연 이 수술을 통해 내가 살아나올 수 있을지 , 쉽게 의식을 회복하게 될지 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마취 자체가 일종의 유사 죽음훈련과도 같다. 전혀 의식도 감각도 마비된 상태로 오로지 타인에 자신의 생명을 맡겨야 되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기도나 기타 종교의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종교의식을 제공하는 일은 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생사의 문제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그토록 절실한 상황에서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채 수술실로 밀려들어간다고 상상해 보라….. 물론 무신론자들의 경우는 전혀 다른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둘째는 삶의 의미와 동기부여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든 인생길에서 특히 병에 걸려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마련이다. 이렇게 사는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자신에게 미래가 있는지를 되물어 보게된다.

이때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하게 되면 삶이 무의미해지고 그 결과 하루 하루가 더 고통스럽고 짜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결국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며 그 결과 더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때로는 이런 삶의 무의미성이 의사들의 치료 노력에 물거품을 끼얹을 수도 있다.

채플린은 방문과 대화를 통해 이런 환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과거의 어두음이 아닌 오늘과 내일의 빛과 소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활을 감당하게 된다. 이는 가장 중요한 영성의 재발견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예를들면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해 본다든지,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들이나 가장 머물고 싶은 때를 함께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 이렇게 힘들고 고통 스러워도 내게도 그렇게 의미있고 잃고 싶지 않던 시절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살아갈 힘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환자의 삶은 포기를 포기할 수도 있으리라….

셋째는 화해와 평안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삶에서 관계가 깨어지고 비틀어질 때 큰 고통이 가해지지 마련이다. 이 시대는 특히 자신과, 가족들과, 이웃과 신과의 관계에서 비틀어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큰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특히 죽기 전에 가장 시급한 과제가 화해 (reconciliation)라고 말할 수 있다. 좀더 너그럽게 자신을 용서하고 가족들을 용서하고 이웃과 하나님과의 비틀린 관계회복을 이루어갈 때 비로서 증오와 집착에서 벗어나 평안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넷째는 초월의 경험이다. 인간은 환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제약과 한계를 지닌 존재이다. 그 누구도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질병, 전쟁, 늙음, 죽음이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늘 한계성이란 살얼음 판을 걷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간은 그 어쩔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초월가능성의 존재이기도 하다. 소위 역사상 위대한 성현들은 이런 한계성을 크게 초월한 인물들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설파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자신의 한계에 묶여 절망에 사로잡일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채플린은 이런 절망 가운데 처한 환자들에게 영적인 차원에서 보다 넓은 눈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수용함으로 자신의 육체적 물질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삶의 대방향전환을 도울 수 있다.

이런 일은 어찌 채플린만의 고유하고 특권적인 영역에 아니겠는가!

09/30/2025

내 마음의 두레박 (2)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다-

배정웅 목사
Chaplain & Spiritual Director



“여호와께서 욥의 노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욥기 42:12)

오늘도 휴무일. 아침에 조용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경 음악으로 은은히 떼제 음악이 흘러나오며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7번이 흐르는 가운데 조용히 마음 속에 오늘의 두레박을 내려 본다.

오늘은 마음 속에 지난 몇주간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흔들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평소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신호대기중 옆을 지나던 식품회사 배달 트럭에 치여 오른쪽 뒷문이 형편없이 찌그러지고 부서지는 사고가 내 마음 가운데 자리잡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몇일 후 아들에게도 운전중 충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 아무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들었지만 왜 갑자기 이런 사고를 연이어 당해야 되는지 당황이되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그 처리과정이 대단히 복잡하다. 우선 현장에서 경찰을 불러 보고서를 받아야 하고 차량국 (DMV)에 사고 경위서를 지정된 날짜까지 보내야 하며 이후 보험사에 보고하고 그들이 지정해준 정비 수리소에서 차를 맡기고 또 렌트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개인적으로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 무척 짜증스럽고 힘든 하루 하루였다. 더구나 이런 일을 혼자만도 아닌 멀리 뉴져지에 사는 아들에게까지 발생했다니 보통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한게 아니였다.

왜냐하면 아들은 대학을 다닐때 내 이름으로 구입해 등록한 차를 아직까지 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내 보험에 나의 소유차량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이 또한 내 문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불편하고 소란스럽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거의 한달이 지나서야 나의 차도 완전히 고쳐져 지금은 정상적이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참으로 이곳 생활에서 차가 문제가 생길 때 어떤 어려움과 불편이 닥치는지를 거듭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짜증스럽고 황당한 사건들을 처리하며 그 결과를 보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이미 10만 마일을 탄 내 차는 이전 보다 더 깨끗한 모습으로 복구되었을 뿐 아니라 사고 이전에 이미 전반부에 크게 균열이가서 벌어져 막대한 비용으로 수리가 필요했던 부분까지 깨끗이 수리되는 기대하지 못한 반전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수리하는데만 적어도 2천불 이상이 소요되었음직하였는데…… 나의 과실이 아니라 상대방의 과실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상대방 보험사에게 이 모두를 깨끗이 감당하고 수리해주었다.

더구나 아들 차는 전반부가 많이 파손되어 수리가 아닌 폐차로 결정 되었다는데 10년 이상 탄 중고차 가격을 예상 밖으로 넉넉히 보상해 주어 그 돈으로 아들 이름으로 새 차를 구입하게 되는 문자 그대로 전화위복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제야 명실공히 내 손에서 아들이 완전 독립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아들 스스로도 자기 이름으로 새 차를 사고 등록하고 보험도 새로 가입하게 되었으니 (이는 오래 전부터 내가 그토록 원하고 아들에게 종용하던 바가 아니었던가!. 이런 주장을 거듭할 때마다 아들은 말없이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내게는 이처럼 앓던 이가 쑥 빠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내 보험료도 절반으로 내려갔으니.....

전화위복, 새옹지마가 다시 떠오른다. 또한 성경 말씀 가운데 오래 동안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난을 당하며 몸부림 쳐야했던 욥이란 인물의 말년의 고백이 떠오른다. “여호와께서 욥의 노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욥기 42:12)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 삶에 결국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기 원하신다. 비록 그 과정 속에 어려움과 실패와 아픔이 있더라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언젠가 그 하나님의 때가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깨닫고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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