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2026
국민이 아닌 대통령 한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역사와 법 상식을 통째로 내던진 국회의원들이 11명씩이나 있다.
민주당 관악갑의 박민규 의원을 비롯한 11명의 국회의원이 임금의 일부를 지역화폐나 상품권으로 지급할 수 있게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거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흘 만에 철회했다. 법안은 거두어들였지만, 그들이 남긴 무지와 아첨의 흔적은 여전히 입맛을 쓰게 만든다. 이 황당한 개정안이 왜 노동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심각한 퇴행이었는지 반드시 짚어야 한다.
말도 안되는 법안이 철회되긴 했지만, 이들 11명의 국회의원 자격도 철회되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주의 자본가들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현금 대신 자신들의 공장이나 구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통표(전표)라는 딱지를 임금으로 주었다. 노동자들은 그 통표 때문에 공장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정해진 구역 안에서 피땀 어린 노동력을 고스란히 착취당했다. 이규정 작가의 소설 을 보면 임금을 현금이 아닌 특정 구역에서만 쓸 수 있는 표로 주는 순간, 노동자는 자유 시민이 아니라 그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주당 박민규 의원 등 11명이 법안을 발의한 배경에 이주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을 본국에 보내는 것을 제한해서 한국에서 사용하자는 생각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 생각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가들 생각과 다르지 않다.
바다 건너 미국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19세기 말 탄광 회사들은 '스크립(상품권)'이라는 자체 화폐를 발행해 탄광촌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종속시켰다. 미국의 유명한 민요 '16톤(Sixteen Tons)'에는 당시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가 그대로 담겨 있다.
"Saint Peter don't you call me 'cause I can't go (성 베드로여, 나를 부르지 마소, 난 갈 수가 없다네)
I owe my soul to the company store (내 영혼은 이미 회사 매점에 저당 잡혔으니까)"
회사 매점에 영혼까지 저당 잡혀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없다던 탄광 노동자들의 눈물, 그것이 바로 현물이 아닌 '통화'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였다. 16톤이라는 노래는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더라. https://www.youtube.com/watch?v=fzlT80jQ3lo&list=RDfzlT80jQ3lo&start_radio=1
더 거슬러 올라가 18-19세기 영국 산업혁명기에도 고용주가 만든 매점에서만 쓸 수 있는 표를 주던 트럭 시스템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피 흘려 싸운 끝에 1831년 트럭법을 쟁취해 냈고, 임금은 반드시 법정 통화로 지급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역사에 새겼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임금 통화 지급 원칙" 역시 이러한 전 세계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과 고통의 역사 위에서 탄생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씩이나 하는 사람들이 이 백 년 전의 착취 구조를 자발적으로 부활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이 노동법의 기초조차 모르는 멍청한 공동행동을 감행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국민의 삶이 아니라, 과거 지역화폐로 정치적 이슈를 만들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눈에 들어 점수를 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권력자 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동자들이 수 세기 동안 싸워 얻어낸 경제적 자유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려 한 셈이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가 없듯, 노동의 역사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표를 구걸할 때는 국민의 머슴이라 외치더니, 배지를 달고 나서는 권력자의 눈치만 살피며 문명을 퇴행시키는 법안을 들이미는 이 비겁한 정치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비록 황당한 법안은 사흘 만에 철회되었지만, 국민과 역사를 기만한 그들의 국회의원 자격 역시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정부와 국회는 권력자를 향한 해바라기 정치가 아닌, 진짜 국민의 삶을 돌보는 정치가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