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힘

진실의힘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1970~80년대에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이 진실 규명에 함께한 인권활동가, 변호사, 의사들과 힘을 모아 만든 재단입니다. 수십 년의 고통과 노력 끝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고문과 투옥의 휴유증으로 몸과 마음은 병들고, 젊은 시절은 속절없이 사라졌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돕고,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출연했습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진실의 힘 인권상' 시상, 6.26 유엔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 고문피해자 집단상담, 고문조작 사건 재심 지원, 한국과 아시아의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극우 연속강좌 제7강 안내]“암호화폐와 자유지상주의: 극우정치의 새로운 인프라”강사: 김승우 한양대학교 사학과∙대학원 비트코인화폐철학과 교수 일시: 2026년 8월 12일 오후 7시~9시장소: 모임공간 상연재(성공...
07/08/2026

[극우 연속강좌 제7강 안내]
“암호화폐와 자유지상주의: 극우정치의 새로운 인프라”
강사: 김승우 한양대학교 사학과∙대학원 비트코인화폐철학과 교수

일시: 2026년 8월 12일 오후 7시~9시
장소: 모임공간 상연재(성공회빌딩 2층)

극우 연속강좌 7강은 “암호화폐와 자유지상주의: 극우정치의 새로운 인프라”입니다.
암호화폐와 자유지상주의는 오늘날 극우정치와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강의를 맡은 김승우 교수는 국제금융과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장기적인 시야에서 살펴보며, 암호화폐를 둘러싼 새로운 금융 질서와 자유지상주의적 사상이 오늘날 극우정치와 결합하는 과정을 분석합니다.

우선 어떻게 암호화폐의 이론적 토대가 20세기 중반 이후 '국가(Leviathan)'에 대한 대항 담론과 맞닿아 있는지 하이에크의 통화론을 통해서 살펴본 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암호화폐의 등장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어떻게 빅테크 기업가들과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암호화폐를 전유하고 있는지를 실증적 사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암호화폐'의 복잡한 '기술'이 아닌 '기술'이 함의하고 있는 정치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김승우 교수는 국제금융사와 정치경제사, 신자유주의의 역사, 지구적 불평등과 국제통화체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국제금융의 변화와 신자유주의가 국가와 민주주의, 권위주의 정치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 왔습니다.
퀸 슬로보디언의 『크랙업 캐피털리즘』을 번역∙출간했으며 최근에는 마틴 돈턴의 『권력과 통치-누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가』번역 감수를 맡는 등 국가와 시장, 권력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극우연속강좌, #암호화폐와자유지상주의, #비트코인, #진실의힘

[진실의 힘 책읽기_ 야만의 시간 2]"한국 국민인데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야만의 시간』에는 첫장면으로 등장합니다.손형근.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한통련의 역사를 따라가다 ...
05/08/2026

[진실의 힘 책읽기_ 야만의 시간 2]
"한국 국민인데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야만의 시간』에는 첫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손형근.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
한통련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식민, 분단과 냉전이 보통의 삶을 어떻게 가르고 왜곡하여 규정해 가는지 보여줍니다.

입국도, 투표도 거부된 한국인

그때부터 손형근은 2023년 현재까지 자기 나라인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오지 못하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여행의 자유 등 기본 인권인 이동권을 크게 제약받고 있다. 그는 국적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여권이 없으면 일본에서 다른 나라를 오갈 때 재입국 허가증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그의 여권이 2009년 12월에 만료된 이후 재발급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도 박탈당한 상태다. 외국에 거주하는 국민도 2012년부터 총선과 대선 때 투표할 수 있게 됐지만, 본인 확인을 위한 신분증으로는 여권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사카 출신의 재일동포3세인 손형근은 대부분의 한통련 회원처럼 남한에 뿌리를 둔 한국계다. 경상남도 함안이 고향인 부친도 오사카 민단의 간부를 지냈던 대한민국 지지자였다. 손형근은 초,중,고를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일본인 학생으로부터 “조센징은 돌아가라”라는 등의 차별을 받으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오사카 인근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중도에 학교를 그만뒀다.
일본사회에 좌절한 그는 아버지의 고향에라도 가볼 생각에 우리말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민단을 찾아갔다. 1971년 스무 살 때였다. 민단의 청년조직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을 소개받아 민족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청이 1973년 한민통 결성의 주역이 되면서 손형근은 이후 자연스레 한민통에서 일했다. 그는 한청 오사카본부 부위원장(1975)를 시작으로 한통련 중앙부사무총장과 사무총장,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2009년3월 한통련 의장에 선출됐다. (1장 반세기가 넘는 차별과 박해 중에서)
#야만의시간 #김종철 #한통련 #재일동포, #진실의힘

[진실의 힘 책읽기_ 야만의 시간 1]김종철 저자는 한국사를 전공하였고 원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신문에서 오랜 기자생활을 하였던 그는 역사와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03/08/2026

[진실의 힘 책읽기_ 야만의 시간 1]
김종철 저자는 한국사를 전공하였고 원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신문에서 오랜 기자생활을 하였던 그는 역사와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합니다. 2022년 정년 이후 그는 한통련 문제를 대한민국 역사 속 재일동포사의 한 부분으로 복원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기로 한 이유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진 ‘반국가단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민주화 이후에도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둘 째,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던 재일동포들이 왜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불온한 존재로 취급되었는가?”
한통련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직후 만들어진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뿌리로 하며, 군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활동을 했지만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습니다. 김종철 저자는 이 과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했습니다.
셋 째, 독재정권이 만든 낙인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된다면, 그것은 과거 독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민주주의의 문제다.
책 제목의 “야만의 시간”도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킵니다. 독재 시절의 폭력만이 아니라, 그 폭력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방치하는 사회의 책임을 묻는 의미입니다.
김종철 저자는 일본어판 출간 기념 초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책은 한통련을 변호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책입니다.”
#야만의시간, #김종철, #한통련, #재일동포, #한국현대사, #진실의힘

[극우연속강좌 6강 참가자 후기]기억의 ‘방화벽’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윤자호(이화여대 사회학 박사과정)🔎‘독일을 위한 대안’의 부상과 ‘피해자화’의 정치 이번 강의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부상의 맥락을...
31/07/2026

[극우연속강좌 6강 참가자 후기]기억의 ‘방화벽’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윤자호(이화여대 사회학 박사과정)

🔎‘독일을 위한 대안’의 부상과 ‘피해자화’의 정치
이번 강의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부상의 맥락을 세 가지로 짚어냈다. 첫째는 정당 지형의 변화다. 2013년 반(反)유로 정당으로 출발한 AfD는 2015년 난민위기를 지나며 반이민·민족주의 정당이 되었고, 2025년 총선에서 20%를 넘겨 제2당으로 올라섰다. 둘째는 "누가 독일인인가?"라는 시민성의 문제로 이주배경 인구가 30%에 이르렀음에도 민족 개념은 여전히 강력하며, 하이트마이어가 추적한 중산층의 지위 불안이 '조야한 시민성'으로 표출된다는 진단이다. 셋째는 통일의 상흔이다. 슈테판 마우의 분석처럼 동독의 문제는 경제적 지표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심리적 소외 및 정체성의 문제이며, AfD는 이 상실감을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세 층위를 관통하는 것은 전후 독일이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 위에 세운 역사문화가 더 이상 견고한 안전장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진단이었다. 가울란트의 '새똥' 발언처럼, 가해의 역사를 상대화하고 독일인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정상과 극단의 경계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의 ‘방화벽’은 어디서든 유효했는가?
강의를 들은 후 가장 마음속에서 오래 붙들게 된 것은 이 '방화벽', 즉 ‘안전장치’의 성격이었다(강의에서 '방화벽'은 정당 간 연정 거부 전략을 뜻했지만,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은 분명 독일에서 극우를 억눌러온 힘이었고, 지금 그 힘이 해체되는 중이라는 진단은 아주 서늘하게 마음속에 와닿았다.

하지만 동시에, 홀로코스트 자체는 여전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정전(正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해체되는 것은 기억의 내용이라기보다(물론 이에 대한 해체도 시도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현재의 정치를 구속하는 힘인 것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불편한 질문 하나가 생겼다. 정전이 된 기억은 무엇에 대해 말하게 하고, 무엇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반성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국가이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이 표현은 2008년 메르켈의 크네세트 연설에서 정식화되었으며 2023년 숄츠가 연방의회에서 반복한 바 있다),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에서의 폭력은 독일 공론장에서 예리하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 자체는 여러 나라에서 관찰된다. 다만 독일의 경우 그것이 동맹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반성의 의무에서 도출된다는 점이 다르다.

즉, 과거의 폭력은 인정받고 애도되지만, 그 인정의 방식이 다른 폭력에 대한 발화가 흘러나올 여지를 손끝으로 막는 구조로 작동하는 것 아닐까. 나는 이쪽이 어쩌면 더 견고한 형태의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강도 이야기가 아니다. 언어와 정당성을 독점당한 폭력은 이름조차 얻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다.

이 논점이 독일 극우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편, 즉 기억의 정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극우의 역사수정주의든, 정전화된 반성이든, 그 대가는 특정한 이주민·난민 집단이 더 많이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 '안전판'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성찰이 독일 내부에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혹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주민의 계층 상승과 중산층의 불안, 그리고 한국의 상황
이주배경 인구가 독일의 복지와 교육을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그 상승이 기존 중산층의 위기감으로 되돌아온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다. ‘밑바닥에 머물 줄 알았던’ 이들이 ‘진짜’ 독일인의 자리로 올라오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진단은, 혐오가 불안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떠오르며 많은 공감이 갔다.

다만 이 대목에서 나는 한국의 현실을 겹쳐 보며 다른 감정을 느꼈다. 한국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독일만큼의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고 학업 중단 비율도 높다. 상승 이동이 일어나서 갈등이 생기는 사회와, 상승 이동의 경로 자체가 열리지 않은 사회는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독일이 부럽다.

그러나 강의의 질의응답에서 이야기 나눈 대로, 이 부러움은 '독일 모델'에 대한 이상화일 수 있다. 독일 역시 이주배경 학생과 비이주배경 학생 사이의 학업 성취 격차가 큰 나라이고, 이주배경 인구 내 양극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니 부러움의 대상을 정확히 특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부러운 것은 이주배경 인구를 사회 구성원으로 셈하는 독일의 제도적 기본값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탄탄하다는 점이다.

🔎독일 노조는 이주노동자를 정말 대변하지 않았을까?
강의에서 독일 모델의 한계를 짚으며 "독일 노조조차 역사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 않았다"고 했고, 문제의식에 공감하나, 여전히 독일 노조를 동경하는 입장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1950~60년대 초 독일노총(DGB)은 외국인력 도입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했었다. 1954년 성명에서 DGB는 국제적 연대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자국에 실업자가 있는 한 노동력 유입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노조의 태도가 거기서 멈춘 것은 아니다. DGB는 1970년대 초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한 특별 부서와 다국어 상담센터를 설치했고, 이 상담센터는 이주민들의 교류와 정치적 네트워킹 거점으로 기능했다. 1984년에는 금속노조(IG Metall)에 외국인위원회가, 산하 노조들에도 관련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제도적 전환점은 1972년 사업장조직법(BetrVG) 개정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사업장평의회의 근로자대표로 선출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1973년 약 20%에서 1990년에는 독일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오늘날 기본법(GG), 일반균등대우법(AGG), 사업장조직법의 체계는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이주노동자의 조직화·대표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김희성·이승현(2024), 「독일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노동조합설립 및 조직화」, 강원법학(77), pp. 485-527 내용을 참조했다).

물론 이것이 충분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독일 노조의 태도는 양가적이었다고 평가된다. 게스트 노동자 시대에는 임시 체류를 전제해 적극적인 조직화에 나서지 않았고, 1973년 포드 쾰른 공장 파업처럼 노조가 이주노동자와 대립한 국면도 있었다. 법적 보장과 실질적 대표성 사이의 간극도 여전하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고, 양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대변하지 않았다고 하긴 힘들지 않을까? 독일 모델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는 매우 동의하지만,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제도적 자원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강의는 우리가 오랫동안 이상화해 온(내 경우 적지 않게 동경해 왔다) 독일 모델의 내재적 한계를 직시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값진 의미를 가진다. 다만 그 직시가 “에이, 독일도 별수 없네."라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한계이고 무엇이 여전히 참조할 만한 성취인지를 가르는 작업이 함께 필요하다고 느꼈다.

독일에서 시민교육은 이미 존재하는 방어선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 방어선이 탄탄하게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본다. 제도적 차이는 더 크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다수는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정주 경로가 단단하게 봉쇄되어 있고, ‘단순 인력’ 이주노동자의 가족결합권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으며, 노사협의회 같은 제도가 있으나 단기순환 체류자인 이주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독일에서 이주민이 '조야한 시민성'의 표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 셈해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그 이전 단계, 즉 셈해지지 않음의 문제가 더 큰 것 같다. 적지 않은 산업과 지역 사회가 이주민들로 인해 지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독일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주민을 권리의 주체로 등록시키는 제도적 통로(체류 자격의 안정성, 가족 결합권 보장, 작업장 내 대표성 등)가 아닐까? 독일이 지금 겪는 갈등은 그 통로를 열어둔 사회가 치르는 비용이고, 한국이 겪게 될 갈등은 그것을 열지 않은 사회가 치를 비용일 가능성이 높다. 후자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강의 이후에
강의 이후 베를린에서 사건이 있었다. 7월 25일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 LGBTQ+ 프라이드 행사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 행렬에 차량이 돌진하고 흉기 공격이 이어져 한 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 가해자는 IS 가담을 시도했던 이력으로 이미 당국에 등록되어 있던 21세 남성이었고, 독일 검찰은 이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규정했다.

물론 폭력을 실행한 쪽은 독일 극우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건 직후의 정치는 정확히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구도로 흘러갔다. AfD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은 트위터(현 X)를 통해 곧바로 메르츠 총리가 '이주민 폭력'에 충분히 조치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자당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대로 바이델 자신이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지만, AfD의 강령과 지지 기반은 성소수자 권리에 적대적이고, 실제로 독일의 CSD 행사는 극우의 조직적 방해와 공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슬람주의 테러가 발생하는 순간 극우는 성소수자를 '우리'의 일부로 호명한다. 성소수자는 표적이자 동시에 도구가 된다.

이주민이 사회 구성원으로 셈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위협으로 감각되듯이, 가시화된 소수자는 보호의 명분이 되는 일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일을 동시에 겪는다. 셈해진다는 것은 안전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된다는 뜻에 가까운 것 같다. 그 싸움에서 누가, 어떻게 대신 말하는지를 보는 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
#극우연속강좌, #독일극우의부상, ,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 #이주배경시민

[극우연속강좌 6강스케치]독일 극우의 귀환: 동독, 통일, 그리고 불안의 정치이용일(대구교육대 교수)✳️독일 극우주의(AfD)의 부상과 정치 지형의 변화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3년 유...
31/07/2026

[극우연속강좌 6강스케치]독일 극우의 귀환: 동독, 통일, 그리고 불안의 정치
이용일(대구교육대 교수)
✳️독일 극우주의(AfD)의 부상과 정치 지형의 변화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3년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적·경제적 성격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2015년 유럽 난민위기를 계기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반이민· 민족주의 정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창당 당시 4.7%의 지지율에 머물렀던 AfD는 독일 의회 진출 기준인 5%에 미치치 못하다가, 2017년 총선에서는 약 13%를 얻으며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이후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여 2025년 총선에서는 20%를 넘어서며 제2당으로 성장했다. 특히 동독정당이라 일컬어질 만큼 동독에서 지지세를 크게 얻고 있는데 중심지가 동독의 튀링겐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독일에서 기민련과 함께 40%이상 지지율을 받았던 사민당(SPD)이 16%로 줄어든 상태이다.
전후 독일은 나치의 역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 위에서 극우 정치의 재등장을 막아왔다. 그러나 AfD의 등장은 이러한 전후 정치문화가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전장치가 아님을 보여준다. 현재 독일의 기존 정당들은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방화벽(Firewall)’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AfD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한다면 이러한 정치적 합의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누가 독일인인가?": 이주 사회화와 독일 시민성의 한계
2004년 이민법 제정 이후 '이주배경을 가진 자'의 독일인구 비율에서 2005년 18%에서 2025년 30%로 늘었으며, 이들은 극빈층부터 바이오엔테크 창업자·녹색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 분포한다. 계절노동자·강제노동자·손님노동자·난민으로 이어진 외국인 고용의 역사 속에서, 이주민은 독일 중산층 복지사회를 떠받쳐온 존재였음에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다.
여기에 2015년 시리아 내전과 유럽 난민위기가 겹쳤다. 메르켈 정부는 약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수용하며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나폴레옹의 신성로마제국 해체(1806년)를 계기로 본격화된 독일 민족주의는 1815년 이후 자유주의와 결합해 발전했으나, 1848년 혁명기 폴란드 독립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건강한 민족 이기주의’를 내세우며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었다. 이후 융커 계급과의 타협을 통한 '위로부터의 통일'(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로 나아가며 문화적·종족적 민족주의가 뿌리내렸고, 이는 나치즘으로 귀결되었다. 전후 서독은 '뷔르거(시민/부르주아)' 개념의 재정의를 통해 계급성을 넘어선 시민사회를 지향했지만(테오도르 몸젠, 돌프 슈테른베르거의 헌법애국주의), 빌헬름 하이트마이어의 장기 연구가 보여주듯 중산층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가속화와 복지국가의 후퇴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혐오 정치가 계속 잠복해 있었다.
이 불안은 밑바닥에 머물 줄 알았던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집단적 혐오와 분노로 연결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버팀목이어야 할 중산층 내부에서 팽배해진 '조야한 시민성(Rohe Bürgerlichkeit)'이라고 진단한다
✳️ 흡수통일의 상흔인 동독 상처와 극우주의
동독 출신 사회학자 슈테판 마오는 『불공평하게 통일되다(Ungleich vereint)』에서 동독이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정체성적 소외를 경험했다고 분석한다. “동독은 언젠가 서독처럼 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불만은 난민 문제와 결합했다. “외국인을 통합하기 전에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난민에 대한 분노는 곧 정치적 지지로 이어졌다. AfD는 바로 이러한 상실감과 소외감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회케가 기억정치의 ‘180도 전환’을 요구하고, 가울란트가 나치 시대를 독일 역사에서의 ‘새똥’에 비유하는 등 나치의 가해 역사를 상대화하고 독일인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려는 기억정치가 겹치면서, 정상과 극단의 경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 통합 정체성을 향한 새로운 과제
오늘날 독일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국민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다. 독일은 더 이상 단일 민족국가가 아니다. 인구의 30% 이상이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와 문화, 정치의 모든 영역에서 이주민 후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독일 사회가 이러한 현실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민족 개념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극우세력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불안, 복지국가의 후퇴, 중산층의 위기감은 외국인 혐오와 결합하며 정치적 극단주의를 강화한다.
결국 독일 극우주의의 부상은 단순히 난민이나 경제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독일은 누구의 나라인가”, “독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 세워진 역사문화가 독일 민주주의 안전판이라 믿어 왔던 것이 세대교체를 하며 바뀌고 있다. 안전판을 지키기 위한 민주시민교육과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질의응답
질문 1. AfD(독일인을 위한 대안) 정당 지지자 중에 젊은 층이 많은가?
최근 젊은 층의 지지가 상당히 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디지털 극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독일 정체성 운동' 등을 중심으로 미디어를 통해 AfD를 지지하는 청년층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질문 2. 독일에서 "시민이 부르주아가 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경제 성장으로 인해 계층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과거 사민당의 기반이었던 전통적 '노동자 정체성'이 옅어지고 중산층(부르주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독일의 주요 노조 대표들이 현장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중산층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된 것 같다.

질문 3. 독일의 복지가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경제적 지표상으로는 통일 후 30년 동안 동독이 서독의 70% 수준까지 따라잡았으나, 박탈감의 본질은 단순한 경제 수치보다 '심리적·정서적 박탈감(하이마트의 상실)'에 가깝다. 난민 문제 등 외부 요인에 대한 반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서독과의 상대적 격차 및 정서적 괴리감이 주요 원인인 내부문제로 보인다.

질문 4. (보충 의견 및 질문)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실업과 난민 배분, 그리고 동독인들의 정서적 부정(Self-Denial) 경험에 대해 어떻게 보나?
(청중 보충 및 메르켈 총리 언급): 통일 직후 동독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았고, 이때 전국으로 배분된 난민들을 처음 접하며 큰 혼란을 겪었다. 비록 경제 지표는 70%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언론·대학 총장 등 고위층(엘리트) 내 동독 출신 비중은 여전히 매우 낮다. 메르켈 총리가 퇴임 시 언급했듯, 동독 주민 상당수가 직업을 바꾸고 자신들의 과거와 삶의 가치 전체를 부정당해야 했던 정서적 상실감이 오늘날 정치적 반발로 나타나고 있다.

질문 5. 만약 남한 중심으로 흡수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동독 주민들과 비슷한 일을 겪게 될까?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자신의 과거와 삶의 궤적 전체를 부정당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정서적 상실감(하이마트 상실)과 분노가 축적될 수 있다. 메르켈 총리가 17년 집권 후 퇴임 시에야 비로소 동독 출신으로서의 소회를 밝힌 점도 이러한 맥락이다.

질문 6. 유럽의 극우는 이주민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중국(조선족)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만 드러나는 듯하지만, 무관심과 침묵 속에서 더 심각한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 과거 독일도 90년대 외국인 비율이 8% 수준일 때 "배가 찼다(보트가 찼다)"고 했지만 금방 30% 수준의 이주배경사회로 진입했다. 한국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다문화 사회로 전환될 것이며, 준비되지 않은 침묵은 향후 큰 사회적 갈등과 극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질문 7.한국의 극우화가 더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서, 독일의 경우 이를 어떻게 제어하고 있으며 성숙한 시민의 자세란 무엇인가?
결국 답은 '시민교육'에 있지만,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독일 모델 역시 한계가 있다. 독일 노조조차 역사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 않았다. 독일의 시민 개념 또한 여전히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Transnational) 현실'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이주민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실질적 동반자로 인정하는 비판적 시각과 성숙함이 필요하다.

질문 8. 우리가 접해온 독일의 사상적·정신적 유산(하이데거, 하버마스 등)도 일종의 허상이었을까?
우리가 가졌던 '독일 모델'에 대한 상이 너무 이상화되어 있었을 수 있다. 독일 역사학계나 지성사에서도 과거 나치 협력 이력을 은폐했다가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독일 역시 서구화·정상화를 추구해 온 일반적인 국가일 뿐이며, 이를 비판적·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질문 9. 그렇다면 독일의 정치·시민교육 지침인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효과가 없었던 건가?
효과가 전혀 없었다기보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주입 금지, 논쟁성 유지, 학생 중심이라는 훌륭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다문화 사회나 극단화된 정치 환경 속에서 이방인을 완전한 시민으로 포용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질문 10.우리는 사민주의를 일종의 고향(하이마트)처럼 이상화하고 있는데, 사민당의 쇠퇴는 어떻게 봐야 하나?
사민당은 1998년 슈뢰더 집권 이후 중도 노선을 취하며 기존의 정체성을 많이 잃었다. 그 결과 사민당의 전통적 입지는 약화되었고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전통적 사민주의 모델이 현대 정치 지형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질문 11.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민당이 무너지며 히틀러가 집권했던 과거와 지금의 상황은 비슷한가?
과거 바이마르 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거대 양당이 무너지고 극우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녹색당과 같은 소수 정당들이 20% 가까이 성장하며 진보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현재 독일 정치는 거대 양당 중심에서 여러 정당이 20% 안팎에서 경합하는 다당제 및 연정 체제로 변화했다. 과거 억눌려 있던 민족주의적 발언들이 사회적 제약 없이 터져 나오는 측면은 있지만, 시민사회 내부의 견제 축 역시 함께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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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연속강좌 여섯번째 강좌는 「독일 극우의 귀환: 동독, 이주, 그리고 불안의 정치」​입니다.  독일에서는 2017년 연방의회선거를 계기로 ‘반이민’과 ‘반난민’을 내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
20/07/2026

극우 연속강좌 여섯번째 강좌는 「독일 극우의 귀환: 동독, 이주, 그리고 불안의 정치」​입니다.

독일에서는 2017년 연방의회선거를 계기로 ‘반이민’과 ‘반난민’을 내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대안당)이 연방의회에 처음 진출했습니다. 이후 2019년 유럽의회 선거와 동부 독일 지역의 주의회 선거에서 세력을 확대했고, 202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약 21%를 득표해 제2당이자 최대 야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역사로 인해 인종주의와 극우 정치가 오랫동안 사회적 금기로 여겨졌던 독일에서, AfD는 어떻게 주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그 지지 기반은 동부 독일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강의를 맡은 이용일 교수(대구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는 독일 극우의 부상을 동독과 서독의 서로 다른 이주 경험, 독일 통일 이후 동부 지역의 체제 전환, 그리고 난민 위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역사 속에서 분석합니다. 이민 문제가 문화적 정체성, 국가주의, 포퓰리즘과 어떻게 결합해 독일 극우의 핵심 의제가 되었는지, AfD가 불안과 박탈감을 어떤 정치적 언어로 조직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특히 독일 사회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이주민 중산층’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시민사회의 경계에 주목합니다. 이주민과 그 후손들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기존 다수집단의 지위 불안과 인정 갈등이 어떻게 나타났고, AfD가 이런 갈등을 외국인혐오와 배제의 정치로 전환해 왔는지를 분석할 것입니다.

진실의 힘 신간 『허위자백』을  유투버에서 소개되었습니다.1부와 2부로 소개 되었고 정박(정승민 박사)님께서 필요한 핵심정리를 잘 해 주었습니다.  #허위자백, #일당백1부https://www.youtube.com/...
20/07/2026

진실의 힘 신간 『허위자백』을 유투버에서 소개되었습니다.
1부와 2부로 소개 되었고 정박(정승민 박사)님께서 필요한 핵심정리를 잘 해 주었습니다.

#허위자백, #일당백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_jbMMhbgnEg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yAqMNNa3ulo

#정박 #정영진 #이지선 #검찰 #경찰 #수사 #과학 #자백 #범죄 #묵비권 #미란다원칙 #수사권 #인권 #보완수사권 #...

[극우연속강좌 5강스케치]극우는 어떻게 그람시를 사용하는가:문화적 헤게모니의 재구성김헌기 강사(성균관 대학교)1. 개요유럽 극우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어떻게 전유해 '메타...
16/07/2026

[극우연속강좌 5강스케치]극우는 어떻게 그람시를 사용하는가:문화적 헤게모니의 재구성

김헌기 강사(성균관 대학교)
1. 개요
유럽 극우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어떻게 전유해 '메타정치' 전략에 활용하는지 살펴보는 강연이다.
강연자 김헌기 선생은 처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 그리고 그람시로 관심을 점차 확장해왔다. 연구 주제는 시기마다 바뀌어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일관되게 '포스트식민주의적 문제의식'이 자리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부분의 식민지가 공식적으로 해방되었음에도, 이후에도 경제적·문화적으로 식민주의적 권력의 효과가 계속 작동해온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연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역사학에 주목한다. 역사학, 나아가 사회과학 일반은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사실상 유럽에서 만들어진 학문, 말하자면 '서구의 학문'이다. 강연자는 이러한 서구중심주의적 역사학을 어떻게 개작하여 서구중심주의를 걷어내고 보다 진보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으며, 극우 공동연구에 참여해 이탈리아 극우 문화를 살펴보던 중, 이탈리아·유럽·미국 극우가 '공산당 수호성인' 그람시를 오히려 상찬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규명하는 내용으로 강연을 준비하였다.
2. 그람시의 생애 (1891~1937)
그람시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해당하는 사르데냐라는 섬 출신으로, 이러한 배경은 중심-주변, 억압자-피억압자 문제에 대한 그의 예민한 통찰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과 척추 질환(낙상 사고로 인한 곱추)이라는 이중의 시련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토리노 대학(역사·철학·언어학 전공)에 진학해 1914년경부터 사회당 활동을 시작했으며,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있은 후 혁명을 전하는 을 쓰는데 러시아의 혁명 성공은 경제조건을 뛰어넘는 '인간 의지'로 설명한다. 1919~20년 '붉은 2년' 시기에는 그람시가 소속한 이탈리아 사회당에서 토리노 공장평의회 운동을 주도했다. 1921년 사회당을 탈당해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에 참여했다.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불법 체포되었으며 그를 체포한 검사가 그람시를 두고 "이 두뇌를 20년간 작동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한 말이 유명하다, 그는 11년간 옥중에서 있다가 사망한다. (37년 사망). 옥중에서 노트 33권·약 3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것이 사후 로 출간되었으며, 그 핵심 문제의식은 '가능한 혁명을 위하여'였고 그 중심에 헤게모니 개념이 자리한다.
3. 헤게모니 개념
마르크스는 경제(토대)가 사회의 근본이고 정치·교육·종교(상부구조)는 그 위에 놓인다는 건축적 비유를 썼으나, 둘의 '관계'는 정밀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 공백이 상부구조를 종속변수로만 보는 경제주의적 역사발전론으로 이어졌다. 알튀세르는 이 미지의 영역(상부구조)을 실제로 탐사한 것이 그람시뿐이라 평했다.
그람시는 지배가 강제(폭력·억압)뿐 아니라 동의(설득)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처럼 보이게 하여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것 — 즉 강제보다 동의가 우세한 권력 상태가 헤게모니다. 다만 시민사회 지배가 흔들리면 국가의 강제기구가 언제든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도 그의 이론에 포함된다.
지배계급은 비판적 검토 없이 통용되는 '상식(common sense)'을 확산시켜 동의를 얻는다. 그람시는 다른 방식의 혁명이 필요한데 즉 느린 혁명이 필요하다 보았고 지배 체제를 반대하는 동의를 획득해야 한다. 즉 대항 헤게모니 구축이새로운 혁명의 전략이라 말한다. 상식에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 '양식(good sense)'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그람시의 '통합국가론'은 국가를 군대·경찰·행정 같은 강제기구('정치 사회')만이 아니라, 가족·학교·언론·종교처럼 설득으로 체제를 유지시키는 '시민사회'까지 포괄한다. 러시아처럼 시민사회가 미약한 곳은 국가기구를 직접 공격하는 '기동전'만으로 혁명이 가능했지만, 서유럽처럼 시민사회가 견고한 '참호'로 작동하는 곳은 장기간에 걸쳐 문화 영역을 잠식하는 '진지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람시의 통찰이다(단, 두 전술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됨).
4. 도둑맞은 그람시
그람시가 정당·국가기구를 넘어선 '문화 영역의 정치'를 사유했다는 점에서, 각국 극우는 이를 '메타정치' 전략의 근거로 삼는다. 강연자는 이를 "도둑맞은 그람시"라 부른다.
프랑스의 제무르·마레샬, 네덜란드의 보데는 지배적 신념이 '문화 기준'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표면적 선거 결과 아래의 '심층 문화'로 내려가야 한다는 논리로 그람시를 인용한다. 알랭 드 브누아는 "우파 그람시주의를 위하여"에서 정당권력이 아닌 문화권력 획득이 핵심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중립'을 표방하지만, 실질은 극우 이념을 정당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체 게바라를 소비하는 청년 문화를 개탄하며 극우 인사를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제시하고, 해방기념일을 '국민화합의 날'로 재규정하려는 시도를 통해 기존 상식에 도전하는 문화 전략을 구사한다. 알렉산드로 줄리는 에서 그람시를 탈정치화하여 '위대한 지식인'으로만 서술하지만, 실제로는 이념 대립의 '탈정당화'를 멈추고 '화합'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로 극우의 정치색을 희석시킨다.
미국과 한국의 우파 그람시주의는 문화 영역에서의 좌파 헤게모니 장악을 경계하며 우파도 문화 전장에 참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의 경우 유럽보다는 미국의 논의를 복제한 흔적이 역력하며 특히 기독교 진영에서 활발히 나타나는데, 그람시의 사상을 충실히 설파하기 보다는 실제로 언급한 적 없는 왜곡된 '강령'이 유포되는 등 허구들이 보인다.
다만 한국의 국정교과서 논란, 뉴라이트의 역사 재평가, 5·18 담론 등도 역사적 사건에 대한 통념을 바꾸려는 시도 등은 그람시적 진지전 전략의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강연자의 진단이다.
5. 맺음말
그람시가 동생에게 쓴 편지의 문구 "지성에는 비관주의, 의지에는 낙관주의(Pessimismo dell’intelligenza, ottimismo della volonta )"를 인용하며, 극우 부상을 견제할 세력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지금, 비관을 비판으로 바꾸어 보는데 여기서 비판은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그리고 그것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인지 그 모순을 언제 작동하고 언제 그 논리를 파괴하는 것인지 이것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낙관을 원하되 비판적 시선은 거두지 않아야 한다.

6. 질의응답
질문 1. 극우는 왜 약자의 언어와 진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가?
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우파들이 이렇게 문화적으로 대중들을 포섭하면서 약자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전유를 하려고 하는 것이 왜 먹히는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를 비롯한 일부 극우 세력이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며 반이민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이러한 담론과 결합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궁금하다
답변 우파(극우)가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는 정치 사회(강제기구)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었다. 시민사회에서의 지배가 흔들릴 때는 언제든 정치 사회가 그 이해관계 보존을 위해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극우가 스스로를 약자처럼 내세우는 것은 현재 정권을 잡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인상일 뿐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실제 약자·종속계급이라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로 이런 전유에 맞서려면 '연대'의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 프랑스혁명부터 1960년대까지 서구의 역사적 과정을 보아도 페미니즘 같은 가치가 단독으로 실현된 좋은 사례는 찾기 어려우며, 노동계급 운동이나 젠더·나이·지위·계급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지배관계를 이루는 다양한 '서발턴' 집단과 결합할 때 그 가치가 더 효과적으로 실현되어 왔다. AfD가 무슬림 남성을 독일 여성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페미니즘의 언어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 부재를 파고든 사례로, 그런 식의 결합이 아니라 사회 내 다른 서발턴적 지위에 있는 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질문 2. 기동전과 진지전에 따른 그 당시 국가론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시민사회가 사실상 부재한 사회였기에 국가의 억압기구(정치 사회)만 장악하면 혁명이 완성될 수 있었지만, 서구는 진지적 시민사회가 장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람시가 강조한 진지전이란 결국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식'의 허점을 공격해 이를 '양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시민사회를 장악해가는 과정이며,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유럽의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그람시에 열광했다 —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한 이들에게 (검열로 인해 감옥에 있는 그람시가 맑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지 않나) 피 흘리는 투쟁 없이도 시민사회에서의 진지전을 통해 혁명이 가능하다는 그람시의 사상이 일종의 지성사적 위안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정치 사회(억압기구)가 성곽의 '해자'처럼 시민사회를 보호하며 시간을 버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합국가론에서처럼 이 둘이 생활 속에서 서로 혼종되어 있는 것인지를 궁금하다.
답변 사람들이 편의상 기동전은 동유럽에서처럼 시민사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공격하는 방식이고 서유럽처럼 시민사회가 고착된 곳에서는 진지전이 적용되는 전술이라 하는데 그람시가 말하고는 있지만 에서 그람시는 기동전과 진지전을 양자택일로 보지 않았다.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것이고(예컨대 인도 식민지에서는 둘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그람시 스스로 언급했다), 정치 사회와 시민사회 역시 뚜렷이 구획된 두 영역이라기보다 서로 겹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검열(censorship) 말씀해 주셨는데 실제로 에는 수백 회 맑시즘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검열로 인해 ‘노동계급’을 ‘서발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도 그렇지는 않다. 검열 보다는 자신만의 어떤 고유한 개념적인 의미를 담아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국가론을 그림으로 보자면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아주 살짝 겹쳐진 상태이다. 정치 사회의 강제성들이 움직이는 윤리적인 기반을 갖고 이 시민사회에 터잡은 것 아닌가 하여 살짝 겹쳐놓았다. 그리고 정치 사회가 해자(垓字)의 역할을 한다 하였는데 정치 사회가 일종의 해자(垓字)에 둘러싸인 성이라고 할 수가 있어서 그것을 공격할 수 없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시민사회가 진지, 참호의 역할을 한다가 통합국가론이다.
질문 3. 한국의 뉴라이트 역사전쟁도 그람시식 '진지전'으로 볼 수 있는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 교과서 시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국 근현대에 대한 공격. 최근에 리박스쿨 그리고 뉴라이트 진영에 의한 이승만 합당 이런 것들이 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우리 한국사 우파들이,이제 그람시의 그런 진지전을 좀 차용해 와서 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는가.
답변 이러한 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우파 그람시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펼치는 전략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용한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핵심은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상식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사람들이 희생과 민주주의를 먼저 연상하는 대신, 조롱이나 희화화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기반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자신들의 역사관을 전달할 수 있는 학교나 교육기관 같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그람시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의 기억과 상식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그람시주의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질문 4. 역사 문제를 둘러싼 공론장은 여전히 가능한가?
최근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부 보수 진영은 기존 역사학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역사 왜곡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뿐 아니라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반발인지 아니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인지 질문했다. 아울러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토론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가능성은 없는지 강연자의 견해를 말해달라.
답변 그러한 공론장이 가능하다면 매우 바람직하지, 현실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서유럽에서 공론장이 비교적 잘 작동했던 시기는 소득격차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1960~70년대의 사회적 조건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5·18과 같은 역사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편견 없이 모여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를 모색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립을 위한 대립이 심화되어 있어, 역사 문제를 비롯한 여러 쟁점에서 서로 다른 진영이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하고 최대한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가 된다.
질문 5. 오늘날 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많은데 사실 2016, 17년 촛불 광장에서는 그 자리에 함께하면서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였고 그 혁명을 이렇게 새롭게 해석을 했을 때 기꺼이 좀 누렸다."강사에게 오늘날의 혁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변 한국 사회는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시민행동 등 큰 정치적 변화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와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얼마나 만들어냈는지를 돌아보면 반복되는 한계를 느낀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기존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이후 새로운 민주적 가치와 사회적 상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연구자로써 혁명이란 책상 앞에서 혁명을 하는 사람이기에 어려웠던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되고, 몰랐던 그람시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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