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4/2026
(한국출판인회의·대한출판문화협회 공동성명)
"제지사 담합 과징금 3,383억 원,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전면 환원해야 한다!"
출판계는 최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과 독서율 저하라는 두 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 출판인들은 저작권 보호의 공백, 줄어드는 독자층,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지식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출판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공생의 신뢰를 저버린 제지사들의 조직적인 담합이었다. 출판의 근간인 종이를 공급해 온 제지사들이 시장 지위를 남용해 장기간 가격을 담합해 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불공정 거래를 넘어, 위기의 출판계에 가해진 명백한 착취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제지회사들의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총 3,38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조치는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반복된 제지사 담합 관행을 끊어낸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종이는 책이라는 지식문화를 담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그릇이다. 출판사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문화를 전파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치솟는 종이 가격의 압박 속에서도 묵묵히 출판 활동에 임해왔다. 그러나 제지사들은 이러한 출판계의 헌신을 볼모로 삼아 천문학적인 부당 이득을 취해왔다. 이는 단순히 개별 출판사의 경영 악화로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출판사가 생존을 위해 출간 종수를 줄여야 했고,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전문 학술서나 신인 작가의 작품 출판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지사들의 담합으로 인해 출판의 다양성은 위축됐고, 독자들이 다채롭고 풍성한 책들을 접할 기회 또한 줄어들었다. 결국 이 불법 행위의 궁극적인 피해는 출판사를 넘어, 문화적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약받은 국민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따라서 이번에 부과된 3,383억 원의 막대한 과징금을 단순히 일반 국고로 귀속시키고 끝내서는 안 된다. 이 재원은 담합이라는 불법 행위 탓에 출판사와 독자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의 결과물이다. 훼손된 지식문화 생태계를 치유하고 침해받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되찾는 데 쓰이는 것이 과징금의 합당한 쓰임일 것이다.
우리는 이 막대한 과징금이 마땅히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환원되어 지식문화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쓰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출판 생태계로 환원된 재원은 대한민국 문화 역량을 도약시킬 핵심 정책들을 실현하는 데 다음과 같이 활용되어야 한다.
▲ 출판 불공정 거래 상시 감시 기구 신설 및 운영
제지사들의 뿌리 깊은 담합 관행이 두 번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종이와 인쇄 등 출판 원부자재 시장의 가격 변동과 불공정 거래를 상시 감시·견제할 수 있는 전담 기구(가칭 ‘출판 공정거래 모니터링 센터’)를 신설해야 한다.
이를 통해 투명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고, 자본력이 약한 중소 출판사들이 거대 독과점 기업의 횡포에 또다시 무방비로 당하지 않도록 튼튼한 제도적 방어막을 구축하는 데 재원이 쓰여야 한다.
▲ 실효성 있는 국가적 독서 진흥책 마련
가장 먼저, 책 읽는 문화를 일상화하는 범사회적 독서 진흥책에 투자해야 한다. 독서율 하락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국민 누구나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실질적인 지원이 급선무다.
▲ K-출판의 글로벌 확산 전폭 지원
우리 책이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K-콘텐츠의 핵심 원천 스토리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K-출판 확산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 우수 도서 보급 확대를 위한 ‘세종도서’, ‘문학나눔’ 예산 대폭 증액
척박한 시장 환경에서도 묵묵히 가치 있는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을 위해 ‘세종도서’와 ‘문학나눔’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수 도서 보급을 확대하고 누구나 양질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공공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출판산업 AI 전환 역량 강화 지원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발맞춰 출판산업의 AI 전환 역량 강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출판인들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며 혁신적인 문화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교육과 연구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 도서 제작비 세액공제 제도 전격 도입
열악한 도서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비 세액공제 제도를 전격 도입해야 한다. 출판사가 경영 부담을 덜고 오롯이 양질의 콘텐츠 기획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더 깊이 있는 책이 독자에게 돌아가는 건강한 선순환 구조가 완성될 것이다.
지식의 힘은 국가의 미래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다. 이번 과징금을 출판 재원으로 환원하는 것은 무너진 공정을 회복하고 문화 강국의 초석을 다지는 실질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다리며, 우리 출판이 부당한 희생을 딛고 독자들에게 더 깊고 풍성한 책으로 보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까지 독자와 함께 멈추지 않고 지켜보며 행동할 것이다.
2026년 4월 27일
한국출판인회의‧대한출판문화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