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026
[논평]공원과 아파트 사이에 도시가 있다.
주택이 부족하다. 그러니 아파트를 짓자. 녹지가 부족하다. 그러니 공원을 지키자. 최근 용산공원 부지를 둘러싼 두 주장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인과관계의 연결은 도시의 문제를 특정 기능의 부족으로 정의하고, 용산을 그 부족을 채우는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한쪽은 공급할 주택의 수를 세고, 다른 한쪽은 보존할 녹지의 면적을 센다. 그리고 시민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도시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도시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경제와 생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가 누구의 삶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누가 그 관계를 결정하는지 묻는 일이다. 누구의 집을 만들 것인가. 공원의 쾌적함과 지가의 상승은 누가 누리는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가.
이 질문들이 사라지는 것은 용산을 비어 있는 땅으로 보기 때문이다. 빈 땅에는 필요한 기능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용산은 비어 있지 않다. 식민지와 군사기지의 역사가 겹쳐 있고, 군사시설과 그 주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있다. 오염된 토양과 남겨진 건물, 끊어진 길과 오래된 나무도 이 땅의 일부다. 용산을 빈 땅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러한 역사와 관계는 지워지고 땅은 다시 국가가 필요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무엇보다 지금 빠져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서울의, 용산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용산이 시민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소유권이 이전되고 담장이 철거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국가와 군대가 독점했던 공간의 결정권까지 시민에게 돌아와야 한다. 서울처럼, 이미 고밀하게 개발된 메가시티의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 규모의 땅을 새롭게 계획할 기회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울의 여건상 다시 찾기 어려운 기회다. 그렇다면 용산은 당장의 부족을 해소하는 부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울이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시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토지를 계속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 주거와 생태, 돌봄과 문화, 역사와 일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시민은 도시의 이용자에 머물 것인가, 도시를 만드는 결정권자가 될 것인가. 우리 앞에는 수많은 질문이 남겨져 있다.
아파트라는 답도, 공원이라는 답도 누군가가 먼저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이미 정해진 두 계획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다. 공론화는 답을 고르는 절차가 아니라 질문과 가능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시민은 이런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제안하고 설계하며 시험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건설은 되돌리기 어렵고 생태복원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욱 성급하게 용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지을 것인가에 앞서 어떤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지, 무엇을 지금 결정하고 무엇을 미래에 남길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시민이 있어야 한다. 용산에서 가장 먼저 설계해야 할 것은 아파트도 공원도 아니다. 서울의 미래를 누가 어떤 원칙과 권한으로 결정할 것인가.
우리는 시민참여가 어떻게 행정의 문법에 의해 축소되는지 오랫동안 지켜봤다. 계획이 확정된 뒤에 열리는 워크숍, 예산과 용도가 정해진 뒤에 고르는 색과 재료. 용산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순서를 뒤집어야 한다. 시민이 먼저 사용하고, 사용하면서 알아내고, 알아낸 것으로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 계획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마침 시민 참여 기반의 공간정책 확산을 위한 공간민주주의헌장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다. 용산은 시민의 공간적 권리와 결정권을 실제 계획과 제도로 구현함으로써, 헌장을 실천적 약속으로 만드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용산은 비어 있는 땅에 하나의 기능을 채워 넣는 사업이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보고 질문하고 결정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실험이어야 한다. 용산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다. 지금 비어 있는 것은 시민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