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026
박홍근 장관님, 먼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어떻게 차별받고 무시당했는지, 법에 따라 책임졌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까지 어떻게 무책임했고 장애인권리를 무시했는지 아시는지요
오늘 장관님께서 시민사회단체 분들을 통해 함께 만나 대화하자고 제안해 주셨고, 장관님의 고민이 담긴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볼 수 있어 먼저 감사드립니다.
장관님,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장관님, 장애인에게 헌법은 때로 휴지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차별은 구조적으로 지속되었고, 분리와 배제는 강화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민주주의의 모습은 아니지 않습니까.
장관님.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관한 일반논평 제5호의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개인의 선택과 통제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많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지원 제도는 이용할 수 없거나 특정 거주 조건에 묶여 있고, 지역사회 인프라는 보편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자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의 개발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된다. 이는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로 이어졌다.”
장관님께서도 이 내용을 알고 계시는지요.
장관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분리되고, 유기되고, 고립되는 현실을 막아 주십시오.
장관님, 전장연이 3주째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동안의 과정과, 장애인들이 차별에 저항해 온 역사적 맥락을 먼저 살펴봐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 이후 25년 동안 지하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외쳐 왔습니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고, 2022년 개정을 통해 국가의 책임이 강화되었음에도 장애인들은 여전히 비장애인에 비해 이동에서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장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는 이동권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법이 존재함에도 장애인의 이동권은 지금까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장관님, 전장연은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가 발생한 2001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21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72차례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지하철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진행해 왔고, 그 일수는 1,132일에 이릅니다.
전장연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탄 이유는 법이 제정되어 있음에도 정부와 정치가 너무나 오랫동안 장애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하찮게 취급해 온 현실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장관님, 그때부터 전장연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를 거쳐 지금 이재명 정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과 달라야 한다면, 지금의 문제를 전장연을 규탄하고 탄압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정치와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갈라치기와 혐오를 조장하며 탄압을 정당화해 왔습니다.
또한 전장연을 ‘특정 장애인단체’라고 부르고, 특정 장애인단체가 집회와 시위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자리라고 낙인찍으며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해 온 서울형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사업 자체를 폐기했습니다. 그 결과 400명의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5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 법 개정을 통해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범위도 광역으로 확대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유기되고, 가족에게 의존하고, 시설화되고, 고립되고,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의 자원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기본적인 예산 조차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전장연은 8월 출근길 지하철 탑승을 다시 시작하면서, 더 이상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도록 해 달라고 장관님께 요청했습니다.
이제라도 박홍근 장관님께서 예산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2027년도 정부예산안에 장애인권리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장관님께서는 “정부 예산은 집회나 시위의 강도에 따라 결정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의문이 듭니다.
의료계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를 중단하며 집단행동에 나섰을 때, 정부는 왜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직접 나서 의료계를 만나고 협의했습니까.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을 요구하며 투쟁했을 때, 정부는 왜 노동부 장관까지 나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까.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인력 감축 중단, 안전인력 충원, 임금 정상화, 외주화·구조조정 문제 등을 이유로 파업을 예고했을 때도 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까.
윤석열 내란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우리는 왜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이 발생하더라도 광화문광장과 도로에 모여 ‘빛의 혁명’을 외쳤습니까.
장관님, “필요한 장애인 정책과 예산은 장애인의 삶과 정책적 필요성, 사업의 타당성, 재정원칙에 따라 책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혀 주신 점은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사업의 타당성’과 ‘재정원칙’은 누구를 위한 기준이었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장연과 만난 자리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우리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그 정권은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법적 질서를 파괴하려 했던 정권이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그들과 같은 기준으로 장애인권리예산의 타당성과 재정원칙을 판단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2021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부터 4년을 넘어 지금까지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을 타며 외쳐 온 것처럼,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기준이어야 합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기준이어야 합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재정원칙과 사업 타당성의 잣대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철폐하고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 책임의 기준으로 논의되고 수용되어야 합니다.
장관님,
전장연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택까지 찾아가 포체투지를 하며 ‘알현’을 요청한 것은 뜬금없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정은경 장관께서는 장관 후보자 시절, 전장연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문제와 관련해 면담을 요청했을 당시 취임 이후 면담하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1년 가까이 기다렸음에도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은경 장관께서는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다른 사회적 갈등과 약자의 문제에서도 직접 만나 경청하고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장연의 면담 요구는 1년 가까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장연을 만나면 다른 장애인단체도 모두 만나야 한다”는 논리로 면담을 거부해 왔기에, 전장연은 마지막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장관의 자택까지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 역시 정은경 장관이 약속했던 면담을 통해 하루빨리 풀릴 수 있도록 함께 힘써 주십시오.
오늘 장관님을 만나 뵙고, 서로의 생각을 직접 나누며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