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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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문화연구소 (재)심경문화재단 철학문화연구소 & 계간 철학과현실 공식 페이스북입니다. "철학문화아카데미"에서는 일반인들을 위한 철학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https://linktr.ee/philculture

1987년 10월, 심경문화재단 이사장이신 우송 김태길 선생님이 주도하고 당시 우리 사회의 여러문제들에 관심이 깊었던 중견 철학자들이 호응하여 우리사회에 새로운 철학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철학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1988년, 「철학과 현실」 무크지로 출발하여, 1989년 3월부터는 「철학과 현실」이라는 부정기 간행물을 연구결실로서 3회에 걸쳐 출간하였고, 1990년 3월에는 계간지로 바꾸어 계간「철학과 현실」 봄호를 출간하기 시작하여 2015년 가을 현재 106호에 이르렀다. "철학문화연구소"에서는 연구원들이 모여 공동 연구나 세미나를 하고 그 결과를 「철학과 현실」의 특집으로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영역을 막론하여 주요한 이슈를 해당 전문가와의 대담을 통해 다루어보는 특별좌담을 두고 있다.

2026 철학과현실 여름호 [특별좌담 지적학적 전환기의 대한미국 - 김병연, 이진우, 인남식교수] 지금 세계에서는 전쟁이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이를 바라보는 타국민들도 쉽게 그 상황을 파악하고 알수 있는 세상이되었습...
01/09/2026

2026 철학과현실 여름호 [특별좌담 지적학적 전환기의 대한미국 - 김병연, 이진우, 인남식교수]

지금 세계에서는 전쟁이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이를 바라보는 타국민들도 쉽게 그 상황을 파악하고 알수 있는 세상이되었습니다.
세계의 전쟁에서 한국 또한 비켜나갈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전락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거 미국은 한국을 도와줬고, 그 외의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였다면, 지금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현재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방향성이
필요한데..’
이를 특별좌담에서는 한국이 주도하는 허브를 만들 필요성이 있고, 세계의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역할을 이젠 한국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철학의필요성 #생각 #한국 #전쟁 #전환기

01/09/2026

성숙의 불씨 제997호: 디지털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의 사명 - 김기봉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1973년 남성 듀오 어니언스가 부른 〈편지〉 가사다. 이 노래는 7080세대의 아날로그 감수성과 정서를 대변한다. 이 세대는 차마 말을 건넬 수 없어 편지를 썼고, 답장을 받기까지의 설렘과 기다림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SNS로 소통하고, 앱으로 만난 이성과 연애하고 결혼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세대와 아날로그 시대를 살다가 디지털 시대로 이주해 적응하며 살아가는 세대가 공존한다. 시간이 흘러 후자가 완전히 사라지면 아날로그 세대의 경험과 삶의 방식은 박물관으로 들어갈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작동하던 문명은 일시 정지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인류가 BC(Before Corona)에서 AC(After Corona)로 바뀐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고 썼다. 다행히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의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세상의 풍경은 달라졌고,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더욱 가속화됐다. 무엇보다 2022년 말 Open AI가 공개한 ChatGPT는 ‘AI 빅뱅’을 일으켰고, 이제는 Before ChatGPT와 After ChatGPT라는 또 다른 BC와 AC의 시대구분을 말할 정도로 대변혁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생성형 AI 이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트 AI가 등장했으며, 그다음 단계로 지능과 신체적 행동을 결합한 피지컬(Physical) AI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업혁명이 기계를 통해 인간의 근력을 대체했다면, 피지컬 AI는 지능을 갖춘 로봇을 통해 인간의 노동 수행 방식 자체를 재구성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했다. 그런데 AI의 진화로 이 세 가지 인간 활동의 기본값(default)이 재설정되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다가온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은 무엇을 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것인가? 이 물음은 머지않아 사라질 아날로그 세대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할 디지털 세대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 낸 중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인 국가, 화폐, 시장경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예술과 문학 등은 오랫동안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게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그 과제를 어느 나라가 얼마나 빠르고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냐가 국력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재명 정부도 AX 대전환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분명 아날로그 세대보다 디지털 세대에게 유리해 보인다. 디지털 기기로 주문해야 하는 카페나 식당에서 기성세대는 진땀을 빼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일상적 일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AI 대전환의 충격을 더 직접적으로 받는 것은 젊은 세대다. 이들은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불안에 직면해 있다. 특히 AI가 초급 사무직과 지식노동 일부를 빠르게 자동화하면서 경력자가 가진 경험의 가치는 유지되는 반면, 대학 졸업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문은 더욱 좁아진다.

기성세대의 중요한 자산은 경험과 안목이다. 이것은 AI가 아직은 온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AI가 특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기술적 숙련의 자동화다. 인간이 기술을 습득해 장인이 되려면 오랜 시간과 인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AI는 학습과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기술적 능력을 빠르게 획득하고, 그 진화 속도 역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 결과 아날로그 세대가 기술을 선배에게 배우며 숙련했다면, 디지털 세대는 많은 것을 AI에 물어보거나 AI에게 맡긴다. 그런 맥락에서 경희대학교 김재인 교수는 젊은 세대를 “디스킬 제너레이션(Deskill Generation)”이라고 부른다. 아날로그 세대는 사라지고 AI는 더욱 빠르게 발전한다. 그러면서 도래하는 것이 기술세(Technocene)다. 기술세란 기술이 단순히 인간에게 봉사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과 존재 방식 자체를 형성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도구로서 인공지능과 로봇은 본래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몸과 마음 자체를 형성하는 단계로 들어선다면,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인가, 아니면 진화인가? 우리는 아직 이 물음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런 세상의 도래는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어렵게 디지털화될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약 3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컴퓨터처럼 전기가 아니라 음식물을 섭취해 에너지를 얻는다. 지능의 여러 영역에서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겠지만, 의식과 감정은 AI가 넘보기 어려운 인간 최후의 보루다. 앱으로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 이를 수는 있다. 하지만 결혼 생활 자체를 앱으로 할 수는 없다. 감정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으로 생겨나며, 부부는 콩깍지가 껴서 속성으로 빠지는 사랑이 아니라 고락을 함께하며 숙성되는 정(情)으로 산다.

연애편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남자가 한눈에 반한 여인에게 매일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마침내 그 여인이 결혼했는데, 신랑은 편지를 쓴 남자가 아니라 그 편지를 매일 배달했던 집배원이었다고 한다. 이게 인간이다. 디지털 문명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만, 젊은 세대의 아날로그 감정 상실은 인간성의 상실이다.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가 사라지는 지금이 30만 년 호모 사피엔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7080세대는 한 생애 안에서 농경사회로부터 산업화, 그리고 디지털 문명에 이르는 문명 대전환을 경험한 특별한 세대다. 기술세가 인간성을 소멸시키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시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 기억의 전수가 필요하다. 아날로그 기억을 디지털 미래로 전승하는 것, 이것이 지구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의 중대한 사명이다.

글쓴이 /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계간 『철학과현실』 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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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불씨 제996호: 놀이는 놀이로 남아있게 해야 한다. - 손봉호요즘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자리와 기회가 없어진다고 한다. 놀이터도 폐쇄되고 학교 운동장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면서 ...
25/08/2026

성숙의 불씨 제996호: 놀이는 놀이로 남아있게 해야 한다. - 손봉호

요즘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자리와 기회가 없어진다고 한다. 놀이터도 폐쇄되고 학교 운동장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면서 만들 수밖에 없는 소리를 소음으로 간주하여 주위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 어디에도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권리를 이 정도로 박탈하는 후진국은 없고, 어느 선진국도 주민들이 이런 권리를 행사할 만큼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장애인 시설 반대운동과 함께 이런 상황을 외국인들이 알까 두렵다.

모든 만물 가운데 놀 줄 아는 것은 사람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웃는 동물(animal ridens)”로 정의한 것과 네덜란드 역사가 하위징아(J. Huizinga)가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 특징지은 것이야말로 짐승과 다른 사람의 특징을 가장 잘 짚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하위징아는 철학 등 학문과 운동경기를 비롯해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화가 놀이에 의해 생기고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짐승 가운데도 송아지처럼 어릴 때만 잠깐 노는 것들이 있지만, 그저 하릴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고, 사람처럼 같이 어울려 경기하고 노래 부르지 못한다. 일생 오직 생존과 번식만을 위해서 몸을 움직일 뿐이다. 다만 사람만 어릴 때뿐 아니라 일생 틈이 나면 생존경쟁과 무관하게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땀을 흘려가면서도 놀 수 있다. 노동은 생산을 목적으로 하지만, 놀이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며 특권이다.

그런데 매우 안타깝게도 요즘 전 세계적으로 놀이가 계속 타락하고 있고, 놀이다운 놀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놀이”가 돈을 위해서 이뤄지고 있고, “놀이”라는 이름으로 땀을 흘리면 돈을 버는 일꾼과 돈을 내고 일꾼의 재주와 승부를 즐기는 구경꾼이 분리되고 있다. 이익을 위해 하는 놀이를 우리말로 “노름”이라고 하는데, 노름 같은 놀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함께 벌이는 올림픽과 월드컵 경기도 거대한 노름판이 될 위험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에는 이긴 경기자에게 수여된 상이란 게 고작 곧 시들어 버릴 월계관이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놀이였다. 1896년에 근대 올림픽 경기를 창시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의 주된 관심도 돈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교육이었다. 그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을 전제로 체육교육을 중시한 영국의 교육제도에 깊은 인상을 받고, 젊은이들의 운동경기가 삶에서 필수적인 공정한 게임(fair play)과 도덕성을 함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경기자들의 인종이나 계급의 차별을 없애므로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이익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 놀이여야 하므로 직업선수들의 참가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가 거듭될수록 세계인의 관심이 늘어나고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어지는 올림픽에서는 그런 교육적 목적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경제적 이익과 국가들의 이기주의적 경쟁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동독, 러시아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 한국 등 몇몇 나라들이 공적으로 선수들을 양성했고, 텔레비전 중계 방송이 가능해지면서 광고 수입이 막대해지자 월드컵과 함께 올림픽 등 국제경기의 타락은 가속하게 되었다. 마침내 1986년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란 사람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때까지 잘 지켜왔던 순수 아마추어들만의 경기에 직업선수의 참가가 허용되었다. 그동안 이미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상황이 공식화한 것에 불과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국제 운동경기가 어느 정도로 장마당이 되었는가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돈은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원흉인데, 놀이의 순수한 재미도 상품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돈이 개입된 놀이는 놀이가 아니다.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할 분야가 한둘이 아니지만, 적어도 놀이만은 반드시 놀이로 보존되어야지 결코 노름판으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 이익 추구를 위한 노동으로 찌든 현대인에게 한없이 소중한 오아시스일 뿐만 아니라, 쿠베르탱이 강조한 교육적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도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특별히 어린이들은 건강한 인간관계, 공정한 경쟁, 도덕성 함양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놀 수 있어야 하고 경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한 주민들과 학부모들의 지극히 편협한 이기주의, 이에 순응하는 교육 당국과 일부 교육자들의 무책임한 무사안일 때문에 우리 어린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고 경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대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남겨 용서받지 못할 세대로 욕먹을 것이다.

글쓴이 / 손봉호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푸른아시아 이사장
‧ 전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 전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성숙의 불씨 제995호: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 - 김도식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언어 문제로 고생하는 일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이발하러 갈 때이다. “앞머리는 다듬어주시고, 귀는 나오게 해주세요. 뒷부분은 바짝 깎아주...
18/08/2026

성숙의 불씨 제995호: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 - 김도식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언어 문제로 고생하는 일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이발하러 갈 때이다. “앞머리는 다듬어주시고, 귀는 나오게 해주세요. 뒷부분은 바짝 깎아주시고요.”를 현지 언어로 표현하려면 한숨부터 나온다. 미국 유학 시절 초반에는 차도 없었기에 선배가 추천해 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이발소를 다녔다. 영어를 잘하는 룸메이트에게 이발소에서 쓸 수 있는 간단한 영어 표현을 배워가기는 했지만, 원하는 내용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표현할 능력이 없기에 늘 주인장의 처분을 기다리곤 했다. 마치 실험 대상이 된 듯한 내 머리를 쓸쓸하게 바라보며, 이런 서비스에 팁까지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단한 희소식임이 틀림없었다. 가격은 이전에 다니던 이발소에 비해서 조금 더 비쌌지만, 마음에 드는 머리를 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기꺼이 낼 용의가 있는 정도의 비용이었다. 그 미용사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을 아는 분이었고, 서양인과는 다른 두꺼운 직모를 다룰 줄도 알았지만, 무엇보다도 그분과는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장점이었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이발소보다는 미용실이 비쌌기에, 그 가게를 알고 나서는 학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 그곳을 애용했다.

어느 날, 미용실에서 이발하고 있는데, 어떤 미국 할머니가 파마를 마치고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나 너무 멋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파마한 머리가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빈말을 못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서, 아내가 머리를 하고 와도 진짜로 예쁘지 않으면 예쁘다는 말은 안 하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솔직히 그 할머니의 파마가 그렇게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이 못마땅해서, “멋있다”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즉답을 회피하는 것뿐이어서, “제가 지금 안경을 쓰지 않아, 잘 안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당황한 것은 할머니만은 아니었다. 한국인 미용사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쩔 줄 모르다가, “안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셨군요!”라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였다. 그 할머니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한 마디로 그분의 좋았던 기분을 제대로 망가뜨렸음이 틀림없었다.

사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이 생각난다. 그냥 “멋있다”라고 한마디 해주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힘들었는지…. 아니면 한술 더 떠서 “30년은 젊어 보인다”라고 조금은 과장된 말을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편협했던 내 성격은 그 할머니의 기분을 망쳤을 뿐 아니라 어쩌면 동양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제공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지금 살아계실지는 모르지만,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때 죄송했다”라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말 한마디면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는데, ‘멋있다’라는 한마디를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했고 내 시각이 전체적으로 부정적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 심보가 못나서 그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정확함을 중시하고 모든 걸 비판적으로 보려는 습성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설령 학문적인 부분에서는 이런 점이 중요하더라도 인간관계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정확해야 할 때와 여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인간관계에서 가능한 한 부정적인 단어 대신 긍정적인 표현을 하려고 연습했다. 선물 받은 물건이 내 취향이 아니어도, “와~ 아주 마음에 든다.”라고 반응하고, 도저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때면, “나 이런 것 필요한 줄 어떻게 알았어?” 또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나의 인간관계가 더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요즘도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러 종종 찾아오는 것을 보면 예전보다는 말로 상처를 주는 빈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이처럼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떠올리면서, 옛날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나를 발견하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못난 나를 꺼내는 작업은 민망하지만 그래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 위로를 준다. 그러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성숙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

글쓴이 / 김도식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2026년 철학과현실 여름호 편집인의 말 「전쟁의 시대와 지정학적 대전환」 이진우교수💡 ‘지정학’ 이라는 단어의 뜻이 뭘까요?       -> 지리적 요인(위치, 지형, 자원, 기후 등)이 국가 간의         ...
14/08/2026

2026년 철학과현실 여름호 편집인의 말 「전쟁의 시대와 지정학적 대전환」 이진우교수

💡 ‘지정학’ 이라는 단어의 뜻이 뭘까요?
-> 지리적 요인(위치, 지형, 자원, 기후 등)이 국가 간의
외교, 안보, 경제 및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거시적 학문
즉, 국가의 대외 정책과 권력 다툼을 지리적 공간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어떤 나라에서는 정말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 세계 질서가 바뀌어가고 있음을 여러분도 알고 계실겁니다.
한 나라의 움직임은 그 나라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음은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란 전쟁을 통해 기름값 상승이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통해 느끼게됩니다.

그럼 한국은 어떤 입장을 지니고,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이제 대한민국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만큼의 약소국이 더이상 아니기에 운명을 스스로 설계할 책임도 커진 한국을 응원합니다.

현대사회는 깊은 고민과 방향성이 필요하기에 철학자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과 공유되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한국이 되길 또한 바래봅니다.

#철학 #대한민국 #지정학 #세계화 #전쟁

성숙의 불씨 제994호: 크세니아와 휴브리스 - 안기석얼마 전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반응이 대단하다. 아이맥스(IMAX)관은 이미 8월 말까지 장애인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좌석의 예약...
11/08/2026

성숙의 불씨 제994호: 크세니아와 휴브리스 - 안기석

얼마 전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반응이 대단하다. 아이맥스(IMAX)관은 이미 8월 말까지 장애인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좌석의 예약이 끝났다.

영화의 원작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인데, 이 작품은 전쟁 서사시가 아니다. 그것은 트로이전쟁 이후 귀향의 서사시이며, 더 정확히는 ‘환대’가 무너진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묻는 윤리적 서사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를 ‘크세니아(xenia)’라고 불렀다. 이는 단순한 손님 접대가 아니라, 낯선 자 안에 신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신성한 의무였다. 원작이나 영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법’이 바로 ‘크세니아’이다. 제우스는 ‘크세니오스(xenios)’, 곧 나그네의 신이었다. 누군가를 환대하는 일은 곧 신을 환대하는 일이었다.

목마를 투입해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의 10년간의 여정 전체는 이 ‘크세니아’가 지켜지는 곳과 파괴되는 곳을 오가며 구성된다. 그리고 그 파괴의 중심에는 언제나 ‘휴브리스(hybris)’, 곧 자기 과잉과 오만이 자리한다.

가장 선명한 사례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고 환대를 청하지만, 폴리페모스는 도리어 손님을 잡아먹는다. 그는 “우리는 제우스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선언한다. 크세니아의 신성한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 오만이야말로 문명의 가장 근원적인 붕괴 지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디세우스 자신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우티스’(nobody의 그리스어)라며 자신의 이름을 속였다가 탈출에 성공한 뒤 굳이 자신의 이름을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라고 외치며 폴리페모스를 조롱하는데, 이 불필요한 자기과시가 포세이돈의 저주를 불러오고 그의 귀향을 십 년간 지연시킨다. 환대를 파괴한 자의 오만과 그것을 응징한 영웅의 오만이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것을 서사시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더 깊은 파국은 이타카에서 벌어진다.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에 얹혀살며 그의 재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들을 위협하며, 환대받는 손님의 지위를 이용해 주인 행세를 한다. 이는 환대의 완전한 전도다. 손님이 주인을 몰아내고, 약자를 향한 배려 대신 강자의 착취가 지배한다. 구혼자들의 오만은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던 상호성의 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귀향하여 그들을 심판하는 장면이 그토록 격렬한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무너진 세계 질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 고대의 서사는 오늘 우리 문명에 놀라울 만큼 정확히 겹쳐진다.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문을 걸어 잠그는 정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디지털 익명성, 승자독식의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이 모든 것은 낯선 존재를 향한 환대의 신성함을 잊어버린 자리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휴브리스’다. 자국 우선주의는 국가적 ‘휴브리스’이며,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자기 확신의 반향실은 개인적 ‘휴브리스’다. 기후 위기 앞에서도 인간이 자연을 손님이 아니라 정복 대상으로 여겨온 오만은, 폴리페모스가 손님을 잡아먹은 그 논리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명의 파국은 언제나 이 두 가지가 결합할 때 일어난다. 환대의 상실과 자기 과잉, 타자를 향한 문이 닫히는 순간, 그 닫힌 공간 안에서 자아는 반드시 비대해진다.

그렇다면 회복의 방향은 무엇인가. ‘오디세이아’는 뜻밖에도 답을 폭력이 아니라 ‘인정(recognition)’에서 찾는다. 오디세우스가 진정으로 귀향하는 순간은 구혼자들을 죽인 때가 아니라, 페넬로페가 그를 알아보고, 그가 다시 아버지 라에르테스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철학자 레비나스의 언어를 빌리자면,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윤리의 시작이다. 낯선 얼굴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중심적 세계의 문을 열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문 앞에 선 낯선 자를 다시 신의 얼굴로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이다. ‘크세니아’는 약자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가 타자에게 빚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이었다. ‘휴브리스’를 넘어서는 길은 자기를 낮추는 데서 시작되며, 환대를 회복하는 길은 내 문턱을 넘어오는 존재를 다시 신성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 ‘크세니아’가 사라지고 ‘휴브리스’가 세계를 지배할 때 목격하는 것은 전쟁과 학살과 파괴일 뿐이다.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그 오래된 진실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쓴이 / 안기석
· 동행미디어 시대 고문
· (재)심경문화재단 감사
· 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출판부장
·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 전 자유언론실천재단 감사

성숙의 불씨 제993호: 형식논리와 분별지 - 이택호형식논리는 사고의 ‘내용’이 아니라 ‘구조’의 타당성을 따지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이 논리는 명확한 구분과 규칙을 통해 참과 거짓을 판단하며, 과학...
04/08/2026

성숙의 불씨 제993호: 형식논리와 분별지 - 이택호

형식논리는 사고의 ‘내용’이 아니라 ‘구조’의 타당성을 따지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이 논리는 명확한 구분과 규칙을 통해 참과 거짓을 판단하며, 과학과 합리적 사고의 기초가 된다. 예를 들면, “A는 A이다. 그리고 B는 B이다.”라는 주장은 2개의 항진명제(Tautology)이다. 그런데 여기서 얻는 지식은 “A는 B가 아니다.”일 뿐이다. “사각형은 사각형이다. 그리고 원은 원이다. 그러므로 사각형은 원이 아니다”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사각형과 원은 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시이물(決是二物)’이지만 원기둥에서 두 개념은 현실적으로 ‘불상리(不相離)’의 관계를 유지한다.

이는 불교에서 사물을 나누고 개념화하는 분별지의 영역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분별은 때로는 실재를 왜곡하고 집착을 낳을 수 있기에, ‘무분별지(無分別知)’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구분과 개념을 넘어서는 직관적 인식과 더 근원적인 진리에 접근하려는 태도이다.

물론 형식논리와 분별지는 가는 길이 다르다. 형식논리는 개념 구분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 하고, 불교의 분별지는 구분을 넘어 진리를 보려고 한다. 무분별지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개념들이 ‘불상리불상잡(不相離不相雜)’의 조화를 이루는 현실을 보고 말할 수 있는 통찰력과 예지력이 성숙한 사회의 집단 지성이 되길 소망하며, 이를 오늘의 성숙 불씨로 삼는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다.”라는 말이 있다. “얼굴이 희고 수염이 없는 젊은 선비”로서 세상 경험이 부족한 사람, 책만 읽고 현실 감각이 부족한 지식인, 실무 능력이나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인물을 지칭한다. 이 표현은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말로, 특히 전쟁이나 정치의 현장에서 경험 없는 학자를 비판할 때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가”, “이론만 있고 실전이 부족한 사람” 등이 있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을 ‘배운 무식꾼(the learned ignorant)’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직역하면 그는 “많이 배웠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학식은 풍부하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 지식은 많지만,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 책은 많이 읽었지만, 삶의 통찰이 부족한 사람 등을 가리키는 비판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의 정가와 언론에서 제기되는 불편한 진실게임의 하나가 ‘선거 부정’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당위’와 ‘현실’을 혼동한 형식논리와 분별지 차원의 뜨거운 감자다. 2018년 6월 13일 실시한 공직자 보궐선거 이래로 줄곧 제기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부실 관리’ 문제가 시비의 핵심이다. 정치인이야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선거 부정’을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극우 음모론자’로 몰아가는 일방적 게임이었다.

“공명선거는 당위이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는 당위의 현실화이므로, 선거 부정은 없다”라는 결론인 셈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당위에서 “이 세상엔 살인 사건이 전혀 없다”라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라는 당위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는 없다”가 현실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두 성숙한 사회가 지향하는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지난 8년간 제기된 ‘선거 부정 시비’ 문제를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반대의견을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거 부정의 정치적 이익을 공유한 사람이거나, 당위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백면서생이거나, 배운 무식꾼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투표는 국민이 하지만, 선거 결과는 개표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스탈린의 어록을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수 많은 것들 중에  #철학 은 어떤가요?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일뿐일까요?서동욱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철학을 ‘삶의 일기예보’에 비유합니다.🌈삶의 분위기와 변화...
03/08/2026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수 많은 것들 중에 #철학 은 어떤가요?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일뿐일까요?

서동욱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철학을 ‘삶의 일기예보’에 비유합니다.

🌈삶의 분위기와 변화를 읽고
🌈익숙한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그러면서 우리 주변의 ‘타자’를 돌아보며
중심이 아닌 주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또한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철학이 가진 힘은 💪
개인주의, AI가 만연한 현 세대에
🧐정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했던 타자를 바라보게 하여
삶을 이해하는 시선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학문입니다.🙂

#타자 #이솔교수 #철학은날씨를바꾼다 #서동욱

철학은 여전히 다가가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학문인가요?🤨조금은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철학이라는 학문을 넘어 생각하고, 고민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바로  #철학 이라고 말입니다.🙃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 우...
30/07/2026

철학은 여전히 다가가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학문인가요?🤨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넘어 생각하고,
고민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바로 #철학 이라고 말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파고들 때,
여전히 과거의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이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즉 생각하는 힘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역할,
철학이 하고있습니다.👍

#들뢰즈 #문제의식 #생각 #가능성

성숙의 불씨 제992호: ‘폴더인사’가 불편한 이유 – 이진우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비수도권 지역에 어마어마한 투자계획을 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
28/07/2026

성숙의 불씨 제992호: ‘폴더인사’가 불편한 이유 – 이진우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비수도권 지역에 어마어마한 투자계획을 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두 회장을 “국가 영웅 또는 국민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크게 감사한 마음을 90도로 허리를 숙인 폴더인사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측근들은 대통령이 큰절까지 생각했다는 뒷얘기를 전하면서 이 폴더인사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폴더인사가 매우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AI 시대를 대비하여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기 위해 기업의 목을 비틀었다는 비난을 염두에 둔 과장된 정치 행위라는 의심 때문일 수도 있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였다면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부각하려면, 정부는 거꾸로 감사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대통령이 폴더인사를 할 정도로 감사한 것을 보여주면, 국민은 어리석게 두 회장이 스스로 결단하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치인과 일반 국민의 문화적 지체는 여기서 드러난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폴더인사를 불편하게 느낀다. 그들은 존경은 인정하면서도 굴종은 거부한다. 몸을 낮추는 것보다 상대를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는 태도를 더욱 중요한 민주적 덕목으로 생각한다. 대통령은 평등한 사람들 가운데 일인자로서 임기 동안만 지도자의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평등한 시민이지만 특정한 지위에 있어서 그에 걸맞은 존경을 표시해야 하지만, 평등 관계를 지울 정도로 과도해서는 안 된다.

큰절과 폴더인사는 민주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과도한 표현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폴더인사는 수직적 위계가 당연시되었던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폴더인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폴더인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양당 대표들의 폴더인사가 떠오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2024년 1월 2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폴더인사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두 사람의 민주 의식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최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을 마중 나가 마찬가지로 90도 폴더인사를 하였다. 이를 바라본 국민은 모두 그들이 겉으로는 복종의 표현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인사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어만으로 관계를 맺지 않는다. 몸짓과 자세, 거리와 시선, 접촉의 방식까지도 사회적 관계를 구성한다. 인사는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몸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이며, 사회가 인간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제도이다. 따라서 인사의 방식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위계, 평등, 공동체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문화사회학적 대상이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인사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관계가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예절교육으로 폴더인사를 가르치는 것도 불편하다. 그렇게 성장한다면, 민주적 관계에 적합한 새로운 예절 대신 민주적으로 포장된 왜곡된 권위주의 문화만 기형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거대한 의례이다. 선거는 축제이면서 의식이며, 유세는 공연이며, 폴더인사는 정치적 퍼포먼스이다. 시민은 단순히 정책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연기를 함께 소비한다. 이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는 합리적 토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상징과 의례, 감정과 몸짓, 이미지와 퍼포먼스 역시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폴더인사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예절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전통적 위계질서와 민주주의적 평등 사이에서 어떤 몸의 문화를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따라서 폴더인사는 단순한 예절도 아니고 단순한 위선도 아니다.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이다. 시민은 정치인의 몸짓을 통해 진정성을 판단하려 하지만, 정치인 역시 그 기대를 알고 몸짓을 전략적으로 연출한다. 결국, 양쪽 모두 하나의 상징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사의 형식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몸짓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 기간에는 허리를 숙이다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 다시 시민 위에 군림한다면, 폴더인사는 민주주의를 위한 예절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기술로 전락한다. 반대로 허리를 깊이 숙이지 않더라도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시민을 동등한 존재로 대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에 더 부합할 수도 있다. 결국, 인사의 문화사회학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깊이 절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은 어떤 몸짓으로 표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글쓴이 / 이진우
· 포스텍 명예교수
· 계간 『철학과현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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