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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현장과 투쟁 속에 있다. (노동전선)👉[전문보기] 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4"투표 여부와...
05/06/2026

노동자의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현장과 투쟁 속에 있다. (노동전선)

👉[전문보기] 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4

"투표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자들의 진정한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작업장과 거리, 노동조합과 투쟁 속에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노동기본권 투쟁, 사회변혁 투쟁을 더욱더 조직하고 확대·강화해 나가자."(본문 중에서)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여야 정치세력은 저마다 민생과 경제, 노동을 이야기하며 노동자 민중의 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반복된 약속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잊혔고,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

[성명] 노동자의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현장과 투쟁 속에 있다.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여야 정치세력은 저마다 민생과 경제, 노동을 이야기하며 노동자 민중의 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
04/06/2026

[성명] 노동자의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현장과 투쟁 속에 있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여야 정치세력은 저마다 민생과 경제, 노동을 이야기하며 노동자 민중의 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반복된 약속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잊혔고,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방정부가 바뀌고 지방의회 의석 구성이 달라졌음에도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확대, 산업재해, 주거비와 물가 상승은 계속되었으며, 지방정부 역시 자본 유치와 기업 지원 경쟁에 매달리면서 노동자 민중의 삶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해 왔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등 정치 권력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노동적 정책을 반복해 왔다. 노동조건 개선보다는 기업 투자 유치와 규제 완화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공공부문에서는 구조조정과 외주화, 민간위탁 확대를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켜 왔다. 이러한 정책은 일부 정치인의 개별적 선택이나 도덕적 한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 축적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체제 속에서 구조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정당은 노동 존중과 민생회복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파업권,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일정한 기대를 모았던 진보정당들조차 조직적 확장에 실패하고, 노동자 민중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키는 데 한계를 드러내며 선거 참패라는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정치 내부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 없었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특정 개인 정치인의 일탈이나 특정 정당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 지방정부 또한 이러한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국가기구의 한 구성 부분이며, 정치 권력은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정치 권력은 자본의 요구를 제도화하고 안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조선·자동차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학교 비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보여주듯 노동자의 권리는 선거를 통해 주어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자신의 집단적 단결과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단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지역과 업종으로 분열시키려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기업과 산업, 지역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할 때 비로소 자본에 맞설 힘을 가질 수 있다.

노동전선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노동자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기보다 자신의 힘과 조직, 투쟁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투표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자들의 진정한 힘은 투표함이 아니라 작업장과 거리, 노동조합과 투쟁 속에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노동기본권 투쟁, 사회변혁 투쟁을 더욱 더 조직하고 확대·강화해 나가자.

2026년 6월 4일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성명]노동자라는 이름으로의 단결」을 거부하는 중앙노동위원회를 규탄한다.중앙노동위원회는 2026년 4월 8일 중앙2025공정9004·부노9020 병합 사건 판정에서 금속노조의 산업별 노동조합 활동을 사실상 제한하는 반...
04/06/2026

성명]노동자라는 이름으로의 단결」을 거부하는 중앙노동위원회를 규탄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6년 4월 8일 중앙2025공정9004·부노9020 병합 사건 판정에서 금속노조의 산업별 노동조합 활동을 사실상 제한하는 반노동자적 결정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사업장 출입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위협하는 판정이다. 노동전선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이번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해당 판정은 APTIV 충주공장 현장순회 과정에서 상급단체 간부와 비 종사 조합원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사용자의 출입 제한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생산 현장 출입 제한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사실상 ‘외부인 출입’ 문제로 축소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별 노동조합 활동은 개별 사업장의 경계를 넘어 노동자들이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단결하기 위한 본질적 권리이며, 상급단체 간부의 현장 방문과 조직 활동 역시 노동조합 활동의 핵심 영역이다. 이를 외부인의 출입 문제로 규정하는 순간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부정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이번 판단은 노동자를 기업별 울타리에 가두고, 노동자 간 연대와 조직적 결합을 차단하려는 자본의 논리를 반영한 것이다. 사용자의 재산권과 통제권을 노동자의 단결권보다 우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후퇴이며 노동기본권 침해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국가기관의 시혜가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된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단결 또한 마찬가지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을 수는 없다.

노동전선은 중앙노동위원회의 반노동적 판정을 규탄하며, 산업별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와 노동자 단결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노동자 단결·연대투쟁을 파괴하는 중노위 결정을 규탄한다!!!

노동자의 단결권을 투쟁으로 쟁취하자!!!

노동자는 하나다. 전국적 단결·연대 투쟁으로 노동해방 쟁취하자!!!

2026년 6월 4일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발제] 제국주의와 노동자국제주의 _ 김형균
01/06/2026

[발제] 제국주의와 노동자국제주의 _ 김형균

2026.6.30(토) 15:00현대사상연구소 세미나 발제

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를 비판하며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 / 20260527)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은 최근 삼성 노조 투쟁을 둘러싸고 형성...
27/05/2026

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를 비판하며

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 / 20260527)

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은 최근 삼성 노조 투쟁을 둘러싸고 형성된 노동운동 내부 논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삼성 노동자들의 성과급·이윤 배분 투쟁을 단순한 임금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 내부의 균열 가능성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운동권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한다면, 삼성 노동자들의 집단적 조직화와 교섭, 그리고 자본에 대한 일정한 양보 강제는 단순한 개별 사업장 투쟁 이상의 상징성과 파급력을 가진다. 삼성은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 전체를 상징하는 기업이며,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조합 조직화를 억압해 온 핵심 자본이었다. 따라서 삼성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자본과 대립하며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김장민이 비판하는 일부 운동권의 냉소주의 역시 실제 존재하는 문제다. 현실에서 일부 활동가들은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임금 정규직의 이기주의” 혹은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 정도로 단순화하며 폄하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추상적 계급의식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노동조건과 생존 문제 속에서 조직되며, 특히, 기업별 노조 체계 아래에서는 더욱 자신의 사업장과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운동은 처음부터 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형태로 등장하지 않았다. 초기 노동운동은 기업별·직종별 이해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자본과 국가의 구조적 압박 속에서 계급적 연대와 정치적 의식을 형성해 왔다. 그런 점에서 삼성 노동자들이 우선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중심으로 투쟁한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곧바로 “이기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실 노동운동의 복합성과 발전과정을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으로 재단하는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장민의 평가 자체가 충분히 타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삼성 노조 투쟁의 의미를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면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와 임금·잉여가치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특히, 성과급과 이윤 배분 문제를 자본주의 자체의 균열처럼 해석하는 부분은 상당한 이론적 비약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임금과 잉여가치의 관계를 지나치게 실체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김장민의 논리 속에서는 삼성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몫 일부를 제도적으로 가져오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단순한 노동소득이 아니라 이윤소득 일부를 노동자가 확보하는 현상이라고 설명된다. 여기에는 자본가의 몫과 노동자의 몫이 객관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이 기존 자본가 몫 일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점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자본가에게 판매하며, 자본가는 그 노동력을 사용해 노동자가 임금 이상을 생산하도록 만든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가운데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이 임금으로 지급되고, 그 이상이 잉여가치가 된다.
이를 가장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 = c+v+s (여기서 c는 기계·설비·원료 등 생산수단에 해당하는 불변자본, v는 노동력 구매 비용인 임금, s는 노동자가 임금 이상으로 생산한 잉여가치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v와 s의 경계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회계적 숫자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 속에서 계속 이동하는 관계다.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하고, 자본은 가능한 한 더 많은 부분을 잉여가치로 전환하려 한다. 즉, 임금과 잉여가치의 경계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자연법칙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세력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되는 사회적 관계다. 김장민의 논리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바로 이 경계를 지나치게 실체화한다는 데 있다. 성과급과 이윤 배분을 두고 “노동자들이 자본가 몫 일부를 가져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성과급을 단순한 임금 형태의 변형이 아니라 자본소득 자체의 일부처럼 이해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성과급과 이윤 배분 역시 기본적으로는 임금체계 내부의 변형이다. 노동자들이 높은 성과급을 받더라도 생산수단 소유권은 여전히 자본가에게 있으며, 투자결정권과 경영권, 생산 과정 통제권 역시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성과 일부를 성과급 형태로 가져온다고 해서 임노동 관계 자체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에서 성과급과 이윤 배분 체계는 노동자들을 기업성과와 결합시키고 자기통제를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삼성과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는 실시간 생산관리, KPI(핵심성과지표)압박, AI 기반 공정통제, 다기능 노동체계, 성과주의 경쟁, 인력감축 후 업무 전가 등이 결합되며 노동강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노동자들은 기업성과를 자신의 문제로 내면화하게 되고, 동료 노동자들과 경쟁하며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게 된다.
이를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서 노동지출량 증가⇒잉여가치 확대

즉,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받더라도 자본은 동시에 노동강도 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훨씬 더 큰 규모의 잉여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급 확대 자체를 곧바로 “자본주의 기본원리의 붕괴” 혹은 “임노동 체계의 균열”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더욱이 김장민은 “기업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윤 일부를 배분받는 현상”을 일정한 “공산주의적 요소”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다. 자본주의 기업 내부에서도 집단성과급, 연공급, 복지제도, 스톡옵션, 기업복지 체계 등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집단적 성과 배분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생산수단 소유 관계와 계급 권력을 변화시키는가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복지와 고임금 체계를 일정하게 수용하며 발전해 왔다. 유럽식 복지국가, 미국 전후 대기업의 고임금 체계, 일본식 기업복지 모델 등은 모두 자본주의 내부에서 존재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들이 존재했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핵심 생산 관계가 해체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 소유권과 생산 과정 통제권은 여전히 자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는 단순히 “노동자 몫을 적게 주는 체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체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과 이윤배분을 받는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관계가 곧바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김장민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의 한계를 지나치게 발전주의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는 삼성 노동자들이 아직 하청·비정규직과 충분히 연대하지 못하는 것을 노동운동 발전과정의 자연스러운 단계처럼 설명한다. 물론 현실 노동운동이 일정한 기업별·직종별 이해관계 속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계급적 연대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은 자본주의 축적체계 내부에 일정하게 통합되기도 하며, 하청·비정규직과 이해관계가 분리되는 경향 역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실제 한국 노동시장 구조는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분절 구조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자본은 바로 이러한 노동자 내부 분절을 활용하여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약화시켜 왔다. 따라서 문제를 단순히 “운동권이 연대를 조직하지 못해서”라고 환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기업별 노조 구조 자체와 자본주의 경쟁체계가 노동자 내부 분절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는 점 역시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더욱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확대하려 한다. 노동시간 연장과 생산성 향상, 노동강도 강화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역시 중요한 수단이 된다. 즉, 노동자들이 명목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물가상승이 더 빠르게 진행되면 실질적 삶의 조건은 다시 악화 될 수 있다. 특히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생활물가 상승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다시 자본축적 구조 속으로 종속시킨다.

여기서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자본의 노동시간 연장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자

자본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임금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확대하며 자신들의 축적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를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여기에 노동강도 강화와 인플레이션까지 결합되며 훨씬 복합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잉여가치 증대 방법 1 - 절대적 잉여가치 증대

먼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다. 노동자는 하루 노동시간 중 일부 동안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자본가를 위한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예를 들어 하루 10시간 노동 중 4시간이 자신의 임금에 해당 하는 필요노동이고, 나머지 6시간이 잉여노동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0시간=4시간(필요노동)+6시간(잉여노동)

여기서 자본은 노동시간 자체를 연장함으로써 잉여노동 시간을 확대하려 한다. 연장근로, 특근, 야간노동, 휴일 노동 확대가 대표적 방식이다. 노동자들이 일정한 임금인상을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노동시간을 늘려 더 많은 잉여노동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장시간 노동체계를 핵심 축적으로 활용해 왔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 첨단산업에서도 형식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괄임금제, 암묵적 초과노동, 프로젝트 집중노동, 교대제 확대 등을 통해 노동시간이 유연하게 연장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반도체·IT·배터리 산업처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납기 압박”과 “생산목표 달성”을 이유로 장시간 노동이 반복된다.

잉여가치 증대방법 2 - 상대적 잉여가치 증대

두 번째 방식은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다. 이는 노동시간 자체를 늘리지 않더라도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필요노동 시간을 줄이고 잉여노동 시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데 4시간이 필요했다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이후에는 3시간 만에 동일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8시간=3시간(필요노동)+5시간(잉여노동)

즉 노동시간 총량은 동일하더라도 자본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잉여노동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 현대 삼성과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는 자동화, AI 기반 생산관리, 공정혁신, 데이터 통제 등이 이러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핵심 수단이 된다. 반도체 공정 자동화, 실시간 생산 데이터 분석,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등은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극단적으로 높인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자유시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본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더 높은 생산목표와 더 빠른 노동속도를 요구하게 된다.

잉여가치 증대 방법 3- 노동강도 강화

세 번째는 노동강도 강화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특히 중요해진 방식이다. 과거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노동시간 연장”에 가까웠다면, 노동강도 강화는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은 노동을 압축하는 방식이다. 이를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서 노동지출량 증가⇒잉여가치 확대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동자가 하루 100개의 제품을 생산했다면, 현재는 동일한 8시간 동안 150개를 생산하도록 요구받는다. 겉보기에는 노동시간이 늘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노동지출량이 증가한 것이다. 삼성과 같은 기업에서는 노동강도 강화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KPI 평가, 실적경쟁, 성과주의 임금체계, 실시간 모니터링, 다기능 노동체계, 인력감축 후 업무 전가 등이 결합된다. 노동자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긴장과 압박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특히 성과급 체계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고 서로 경쟁하도록 만드는 자기통제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인원을 줄인 뒤 남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공정을 맡기거나, AI 기반 작업관리 시스템을 통해 작업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방식은 노동강도를 극단적으로 강화한다. 이러한 방식은 노동자의 피로와 스트레스, 건강악화를 동반하지만, 자본 입장에서는 동일한 임금으로 더 많은 노동을 끌어낼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또다른 방법 - 인플레이션
네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많은 경우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 문제는 단순한 경제 현상 정도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축적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잠식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가장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실질임금 = 명목임금 / 물가수준

즉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물가상승 속도가 더 빠르면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임금이 5% 인상되었지만 주거비·식료품·교통비·교육비가 8% 상승하면 노동자의 실제 구매력은 감소한다. 겉으로는 임금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력 재생산 조건은 오히려 악화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시장 자연현상”이 아니다.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는 막대한 유동성 공급과 신용팽창이 지속되며 자산가격과 생활물가를 끌어올린다. 자본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윤율을 방어하기 위해 통화팽창과 금융완화를 활용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물가상승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직접적인 압박을 가한다. 삼성 노동자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조차 서울과 수도권의 주거비 상승 속에서는 장기 대출과 높은 생활비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임금인상분 상당 부분이 주거비·교육비·의료비로 다시 흡수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노동자계급 내부 분열을 강화하기도 한다. 일부 고임금 노동자들은 자산투자와 금융투기를 통해 일정 부분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은 생활물가 상승에 훨씬 직접적으로 타격받는다. 그 결과 노동자 내부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러한 여러 방식들이 동시에 결합된다는 점이다. 자본은 단순히 노동시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노동강도 강화, 기술통제, 금융화, 인플레이션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며 잉여가치를 확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확대를 쟁취했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 축적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잉여가치를 확대하려 하며,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력을 더 깊게 통제하려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문제는 단순한 “분배 비율” 문제가 아니라 생산 관계와 권력 관계 전체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산영역에서만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와 부채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미래소득까지 포섭한다. 주택담보대출, 학자금대출, 신용대출, 연금체계 등은 노동자들이 미래 노동까지 담보로 잡힌 상태에서 살아가도록 만든다. 따라서 삼성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흔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은 고임금 노동자층 일부를 부분적으로 포섭하면서 노동자 내부 분절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결국, 삼성 노조 투쟁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더 많은 몫을 가져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삼성 노동자들이 무노조 경영 체제 속에서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자본의 통제에 맞서 싸우며 일정한 집단적 힘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 과정은 기업별 노조 체계와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 역시 드러낸다. 따라서 삼성노조 투쟁은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냉소적 폄하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속 노동운동이 가진 가능성과 동시에 모순, 그리고 계급적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복합적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순한 분배문제로 환원하거나, 반대로 단순한 이기주의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노동자계급 내부 구조의 모순 속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김장민의 원글 : https://ohhangang.blogspot.com/2026/05/blog-post_25.html

[노동] 삼성전자 투쟁을 생각한다 (이철의)👉[전문보기] 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3"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
27/05/2026

[노동] 삼성전자 투쟁을 생각한다 (이철의)

👉[전문보기] 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3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
모든 운동은 지향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투쟁은 노조나 조합원들이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투쟁은 결코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하청이나 연관업체 노동자는 물론 삼성전자에 속한 전체 조합원의 요구조차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에 요구한다
민주당 정권과의 어정쩡한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적이고 계급적인 노동운동의 본질을 되찾아라." (본문 중에서)

이철의 (돌팔이 농부)최근 삼성전자 파업투쟁에 대한 논란이 심각했으므로 전직 노동운동가의 시각을 덧붙인다. 나는 귀촌한 이래 농사일을 주업으로 하였고 최근 송전탑 반대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삼성전자 투쟁에 대한 나....

김승만 동지 2주기 추모식
27/05/2026

김승만 동지 2주기 추모식

[노동] 삼성전자노조 투쟁이 변혁적 노동운동에 던진 질문들 (오세중)👉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21.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25/05/2026

[노동] 삼성전자노조 투쟁이 변혁적 노동운동에 던진 질문들 (오세중)

👉http://www.workersnews.co.kr/bbs/board.php?bo_table=issue_8&wr_id=92


1.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단순히 ‘노동권 보장’과 ‘노동의 대가 요구’ 프레임으로만 지지해야 하는가?
2. 준비되지 않은 연대의 강요인가, 전선의 독자적 구축인가?
3. 노동자 계급의식은 투쟁 속에서 ‘저절로’ 발전하는가?
4. 변혁적 활동가들의 진짜 역할은 무엇인가?

[성명] 대법원은 누구의 법인가? 현대중공업 하청·이주 노동자 원청교섭 부정 판결을 규탄한다!!!지난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
22/05/2026

[성명] 대법원은 누구의 법인가?
현대중공업 하청·이주 노동자 원청교섭 부정 판결을 규탄한다!!!

지난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했다. 9년에 걸친 투쟁과 법정 싸움 끝에 돌아온 것은 “2026년 3월 10일 이전 기준으로는 원청교섭을 인정할 수 없다”는 냉혹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어떠한가? HD 현대중공업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배치, 생산물량, 잔업·특근, 인력 운영, 안전관리까지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다. 하청업체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원청 생산 체계의 말단 관리기구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조선업 초호황 속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일당이 높다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한 현실은, 누가 실질 사용자이며 누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자본의 실질 지배는 외면한 채 법적 형식만을 앞세워 원청 책임을 부정했다. 이는 단순한 판결이 아니다. 원청 자본에게는 무한한 사용자 권한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자에 대한 책임은 지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다시 말해 “지배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자본의 요구를 국가 사법부가 공식 승인한 것이다.
이번 판결의 피해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투쟁을 가로막고 노동조합 조직화를 위축시키려는 정치적 판결이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노동을 통제하면서도 교섭 의무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면, 오늘날 확대되는 간접고용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끝없는 착취 구조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열악한 위치에서 위험과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조선소의 고강도 노동과 산재 위험 속에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원청은 책임을 하청업체 뒤로 숨기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원청교섭은 단지 교섭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과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우리는 분명히 밝힌다.
원청교섭은 법원이 시혜적으로 허락하는 권리가 아니다.
현장의 투쟁과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으로 쟁취해 온 권리이다. 역대 노동기본권의 확대 역시 법원의 선의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판결 또한 투쟁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시켜 줄 뿐이다. 더 많은 하청·이주 노동자 조직화, 원하청 공동투쟁,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 투쟁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또한, 간접고용 체제를 통해 무한정 착취를 확대해 온 재벌 대기업들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싸울 것이다.
대법원 판결 하나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생산을 움직이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현장을 지탱하는 하청·이주 노동자들의 힘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

간접고용 철폐하고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투쟁으로 원청교섭 반드시 쟁취하자!

2026년 5월 22일
현장실천사회변혁 노동자 전선

삼성 투쟁,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삼성 노동자들의 이번 교섭과 투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 투쟁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기존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한 목표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계비 수준...
21/05/2026

삼성 투쟁,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

삼성 노동자들의 이번 교섭과 투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 투쟁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기존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한 목표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면, 이번 삼성 투쟁은 그 경계를 넘어섰다. 노동자들은 단지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생산한 가치에 대한 소유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핵심은 이른바 “영업 가치”, 즉 기업의 잉여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삼성 자본은 성과급과 영업이익을 마치 기업 경영진의 능력과 투자 결정의 결과물인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반도체를 생산하고, 공장을 운영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상품을 만들어낸 주체는 결국 노동자 자신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업이익은 결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다른 표현이다. 자본가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사적으로 점유한다. 그러나 이번 삼성 투쟁은 바로 이 지점에 균열을 냈다. 노동자들은 성과급 문제를 통해 “잉여가치는 누구의 것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분배 요구가 아니라, 생산물과 잉여가치의 소유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이 자신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생산수단조차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공장, 원료,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을 자본가의 고유한 소유물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수단 역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공장을 건설한 것도 건설 노동자들이고, 기계를 제작한 것도 금속·기계 노동자들이며, 원료를 채굴하고 가공한 것 또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공장과 기계, 원료 등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가치를 생산물 속으로 이전할 뿐이며, 이를 우리는 ‘불변자본’이라 칭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되는 수천억 원 규모의 장비와 공장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반복적으로 작동하며 자신이 마모된 만큼의 가치만을 생산물에 이전한다. 원료 역시 마찬가지다. 실리콘 웨이퍼와 각종 화학 재료는 가공 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존 가치를 제품 속으로 옮길 뿐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노동, 즉 노동자들의 노동력이다. 노동자는 생산 과정 속에서 단지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창조한다. 바로 이 초과된 부분이 잉여가치이며, 자본의 이윤과 축적의 원천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바로 이 살아 있는 노동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거꾸로 보인다. 거대한 공장과 첨단 설비, 자동화 시스템이 모든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삼성과 같은 초거대 기업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사람들은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와 첨단 반도체 공정을 보며 마치 자본 그 자체가 부를 창조하는 힘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기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장을 설계하고 유지·보수하며 생산 공정을 운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생산라인의 자동화조차 과거와 현재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과 기술 축적의 결과물이다. 즉,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을 뿐,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낸 존재는 아니다. 생산수단은 역사적으로 보면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노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인간 사회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역시 세대를 거친 노동자들과 민중의 집단적 경험과 노동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가는 단지 법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사회적 생산물을 사적으로 독점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생산은 철저하게 사회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협업하고, 사회 전체의 기술과 인프라가 결합되어 하나의 상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생산물과 생산수단, 그리고 잉여가치의 소유는 극소수 자본가에게 집중된다. 다시 말해 생산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소유는 사적으로 독점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한 개가 생산되기까지 연구개발 노동자, 생산직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물류 노동자, 건설 노동자, 발전 노동자 등 사회 전체의 노동이 결합된다. 국가가 제공한 교육 시스템과 산업 인프라, 전력과 교통 체계 또한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성과는 삼성 자본의 이윤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자본은 이를 자신의 경영 능력과 투자 위험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생계비라고 이야기되는 임금 수준 자체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임금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자연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의 힘 관계와 투쟁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과 물가 인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은 항상 부족한 수준으로 강제된다. 오늘의 임금 인상은 내일의 물가 상승 속에서 다시 잠식되며,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 조건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적절한 임금” 혹은 “정당한 임금”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립하기 어렵다. 임금과 잉여가치 사이에는 절대적이고 고정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영업이익이라고 부르는 주장 역시 근본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전체가 애초부터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임금 인상을 넘어 영업이익, 즉 잉여가치를 쟁취하자”는 표현 또한 엄밀하게 보면 불완전한 표현이다. 마치 임금은 노동의 몫이고 영업이익은 자본가의 몫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의 영업이익 15% 요구 투쟁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임금과 영업이익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 임금을 포함한 가치 전체가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성과급 투쟁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을 단순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아직 완전히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성과급 체계와 기업별 교섭 구조는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을 다시 개별 경쟁과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 속으로 흡수하려는 강력한 통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은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이윤 확대를 자신의 이해와 동일시하도록 강요한다.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와 협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평가와 더 많은 성과급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존재로 재편된다. 삼성의 성과급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막대한 영업 이익의 일부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삼성의 경쟁력 유지”와 “기업 성장”이라는 논리에 묶여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이란 결국 더 강도 높은 노동, 더 빠른 생산 속도, 더 낮은 비용 구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비용 절감의 상당 부분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삼성과 같은 초거대 독점자본의 이윤은 결코 삼성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노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반도체와 전자 산업 전체는 복잡한 원하청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원청 대기업은 핵심 이윤을 독점하는 반면,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속에서 생산을 떠받치고 있다. 위험한 공정과 불안정한 업무는 외주화되고, 비용 절감 압력은 하청으로 내려보내진다. 더 나아가 자본의 축적은 개별 기업 내부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전력·교통·산업단지·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회 전체 노동자들이 생산한 인프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삼성 역시 생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즉 삼성의 이윤은 사회적 노동 전체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자본은 그 집단적 성과를 사적으로 독점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생산한 사회적 부가 소수 자본가의 사적 소유가 되는가”라는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필연적으로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선 공동의 투쟁을 요구하게 된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 물류 노동자, 청소·시설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 존재하지만 모두 삼성 자본의 축적 구조를 떠받치는 노동자들이다. 자본은 이들을 서로 다른 계약 구조와 임금 체계, 복지 수준으로 분리함으로써 공동의 이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모두가 하나의 생산 체계 속에서 집단적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이해관계와 고용형태의 차이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원청 정규직만의 임금 인상 요구가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와 비정규직화,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주화 문제까지 함께 제기할 때 비로소 자본의 축적 구조 자체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진다.

물론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 역시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은 흔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득권 지키기”로 왜곡하지만, 실제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자본의 이윤 확대 논리와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는 중요한 계급투쟁의 일부다. 특히, 삼성과 같은 무노조 경영 체제를 유지해온 초거대 독점자본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교섭과 파업에 나선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성 자본은 오랫동안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철저히 통제하면서, 개별화된 노동자 관리와 성과 경쟁 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억눌러 왔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영업이익과 성과급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에 나섰다는 것은 자본의 통제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역시 결코 자본이 “시혜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시간의 노동과 집단적 투쟁,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 속에서 쟁취된 결과물이다. 자본은 언제나 임금을 낮추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려 하며, 노동자들의 몫을 줄여 더 많은 잉여가치를 확보하려 한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 역시 자본의 축적 논리에 맞서는 현실적이고 정당한 투쟁이다. 더욱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후퇴하면 그것은 곧바로 하청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기준으로 전가된다. 반대로 상층의 노동조건이 일정하게 방어될 때 다른 노동자들의 조건 역시 일정 부분 지켜질 수 있다. 자본이 끊임없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귀족노조”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유 역시 노동자계급 전체의 기준을 낮추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미 없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느냐에 있다. 만약 투쟁이 기업 내부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데만 머무른다면 자본의 분할 구조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들의 투쟁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연결하고, 자본의 이윤 구조 전체를 문제 삼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때 그 투쟁은 훨씬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번 삼성 교섭 투쟁이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는 분명하다. 노동자들이 단지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누가 사회적 부를 생산하며, 누가 그것을 소유하는가”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교섭 전술의 변화가 아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투쟁의 방향을 새롭게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은 대체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전제로 한 채 그 안에서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 수준을 둘러싸고 투쟁해왔다. 그러나 이번 삼성 투쟁은 생산과 분배, 소유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적 소유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가 왜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는가, 생산수단과 기업의 운영 방향을 왜 노동자들은 결정하지 못하는가,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부를 왜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요구를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문제의식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생산 현장의 조건 개선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생산 체계와 권력 구조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노동운동은 단순한 이해관계 투쟁이 아니라 사회 변혁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성과급과 경쟁 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노동조합 운동을 임금 협상 수준에 가두려 한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분할 구조 속에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동 이해를 형성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삼성 투쟁이 남긴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선 계급적 연대와 공동투쟁의 전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투쟁은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을 더 이상 “당연한 자본의 몫”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노동조합 운동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운동을 넘어, 사회적 부의 생산과 소유를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번 삼성 투쟁은 바로 그 가능성을 드러낸 투쟁이었다.

전문은 https://napo.jinbo.net/v2/archives/1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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