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3/2026
여론에 기댄 ‘쉬운 답’이 아닌, 실효성과 아동·청소년 인권을 함께 고려한 ‘어려운 해법’을 선택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촉법소년 상한 연령(현행 만 14세 미만)을 낮추는 방안을 공론화하고, 두 달 내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4월 말까지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형사책임 연령 조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단기간에 결정하겠다는 방침이 제시된 것이다.
그동안 찬성 입장에서는 촉법소년 범죄 증가와 13세 비율을 근거로 연령 하향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통계는 보다 신중한 해석을 요구한다. 법원행정처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촉법소년 중 13세 비율은 오히려 감소 추세를 보였고(2014년 75.8% → 2023년 62.1%), 대검찰청 「2024 범죄분석」에서도 소년 흉악범죄는 연도별 증감은 존재하지만,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증가 추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사법정책연구원(2025) 연구에 따르면 최근 소년범죄의 증가는 강력범죄 확대보다는 재산범죄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일부 소년들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공분과 두려움은 지극히 정당하며, 이를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는 문제는 여론의 흐름에 맡길 사안이 아니다. 이는 소년사법의 철학과 국가 형벌권의 범위를 재설정하는 중대한 결정이며, 아동·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여론을 흔들 수는 있지만, 형사정책은 감정보다는 데이터와 원칙에 근거해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충분한 사회적 숙의와 객관적 근거 검토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아동복지의 관점에서 범죄소년 또한 보호의 대상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을 보장하며, 이를 실현할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공간 역시 사회이며, 그 사회는 가정·학교·또래집단·지역사회·온라인 환경을 포함한다. 따라서 ‘가정과 환경의 문제’를 ‘소년 개인의 일탈’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이며, 헌법 제6조에 따라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대한민국에 형사책임 최저연령 14세 유지를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을 고려할 때, 형사책임 연령 하향은 인권 보장의 후퇴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아동은 국가 형벌권의 확장 대상이 아닌, 보호와 회복의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아야 한다.
둘째,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처벌보다 교화와 회복을 중심에 둔 소년법의 취지와 어긋난다.
더 어린 나이에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개인적·사회적 낙인을 조기에 고착화할 위험이 있으며, 보호와 교육적 개입을 통한 재사회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소년범죄 문제가 해결된다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법무부는 소년의 신체적 성숙과 「민법」·「공직선거법」상 연령 하향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신체적 발달이 곧 판단 능력이나 자기통제 능력의 성숙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소년의 정신적 성숙도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경험적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 더욱이 권리 행사 연령의 조정과 형벌 책임 연령의 조정은 성격이 다르다.
국내 형사정책 연구(2023)는 청소년의 충동 조절과 위험 판단 능력이 여전히 발달 과정에 있음을 지적하며, 해외 실증 연구 역시 조기 형사사법 편입이 재범 감소로 이어진다는 확정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한다.
셋째, 국가의 책무는 처벌을 확대하는 데 있지 않고, 보호와 예방 체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
소년범죄는 개인적 일탈로 환원하기 어려운, 학대·방임과 빈곤, 정신건강 문제, 학습 결손과 학교 부적응이 중첩된 구조적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의 공동 책임이 요구되는 문제다. 보호받아야 할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이 누적될 때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촉법 소년 연령 하향은 책임을 개인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일 뿐, 이러한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범죄 감소의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위기 아동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학교 내 전문 상담교사·사회복지사·정신건강 전문가를 확충하여 상시적 상담과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학대·방임 가정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부모 교육,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병행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회복 프로그램과 멘토링·직업체험·대안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보호시설 역시 처벌의 공간이 아니라 교육과 재사회화의 공간이라는 원칙 아래, 직업훈련·심리치료·개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도록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이 촉법소년 상한 연령 조정 문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숙의를 요청한 점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그 논의는 일시적 여론이나 분노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형사책임 연령은 소년사법의 철학과 국가 형벌권의 범위를 재설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며, 통계와 연구에 기반한 검증 가능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처벌 연령 하향은 여론에 반응하는 ‘쉬운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소년범죄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가정·학교·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예방과 회복의 체계를 구축하는 ‘어려운 풀이 과정’이야말로 청소년 범죄율과 재범률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길이다.
국가는,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2026년 3월 3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