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5/2026
5월 오랜만에 비가 쏟는다. 아침 일찍부터 달그락 문을 밀고 든다. 오랜만의 습기가 문을 반대편에서 힘껏 민다. 문이 힘겹게 열림과 동시에 밤새 괸, 습기 특유의 냄새가 확하고 몰려나온다. 습기로 복슬복슬해진 머리를 연신 쓸어내리고 있으니, 라온 대표님이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툭툭 털며 들어온다. 준비는 잘 되었냐는 질문에 멋쩍게 웃는다. 매번 잘 해내면서 항상 자신이 없다.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더라면... 하고 있으니, 제법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이 돌아온다. 음... 아직은 활동가로 많이 먼 꼴이다. 다른 분들이 주차장에 모여 있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꾸린다. 해가 밝은데 달그락 문을 잠그고 나오는 느낌이 참 미묘하다. 유리문 밖은 여전히 비가 툭툭 바닥을 때린다.
주차장엔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이미 도착해있다. 톡톡 빗방울이 활짝 펼쳐진 우산들이며, 차 본네뜨며 바삐 때리는 소리가 참 좋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른다. 선발대 출발! 차가 비에 젖은 주차장의 쎄멘을 긁으며 쩍쩍 소리를 낸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익산청소년수련관에 도착한다. 주차장엔 이미 행사 참여며 준비며 하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로 가득이다. 군데군데 웅덩이진 주차장을 찰박이며 들어선다. 먼저 온 전북자원봉사센터 직원분들이 세팅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우리도 우리 나름의 준비를 한다. 자원활동가분들에겐 각자 맡은 역을 안내해 준다. 궂은날 선뜻 시간을 내준 분들에겐 참 감사하다. 발제자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서고, 포럼을 보러 온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채운다.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포럼장을 채울 때면, 대표 청소년은 여전히 떨리는지 포럼장을 왔다갔다 한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제법 과하게 장난을 친다. 과한 동작을 하기도 하고, 슬쩍 다가가 앞에 있는 사람들을 감자나 뻘게벗고 있다고 생각해봐라는 등의 농도 던진다. 사실 광대 노릇은 다행히, 긴장이 풀렸는지 편하게 웃는다.
시간이 되고 포럼 행사가 진행된다. 대표 청소년께 화이팅!을 외쳐주고 자리를 안내해 준다. 그리곤 담당하게 된 기자재실로 돌아와 빙글 앉는다. 청소년 자원활동과 관련된 전문적 이야기들이 쭉 흐른다. 봉사활동의 역사, 앞으로 청소년 자원봉사가 가야 할 길, 자원봉사와 청소년 시민참여 등등의 이야기가 기자재실 네모나게 튼 창을 통해 날아든다. 봉사활동... 청소년기 봉사활동 경험에 대해 돌아본다. 부끄럽게도, 그리 많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졸업을 위해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봉사활동을 했을까? 봉사활동을 하는 그 행위 자체는 즐거웠지만, 께을배이 성격상 굳이 스스로 찾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런 생각에 닿으니, 달그락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들, 라온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 포럼 내내 나오듯, 자원봉사가 더 이상, 굳이 찾아 해야할 이유가 없어진 요즘, 과연 우리들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봉사를 통한 사회 참여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라온 담당 활동가로 더욱 이 질문은 무거이 다가온다.
학술가들의 발제가 끝마치고, 실제 봉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발제자로 무대를 오른다. 흐르고 흘러, 라온 대표님의 발표 시간. 늘 있는 라온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라온과 함께하게 된 계기를 소개한다. 처음 만났을 때 종종 듣긴 했지만, ‘어쩌다’가 가져오는 긴 인연의 힘은 참으로 신기하다. 쭉 라온 활동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간 함께해 온 일들이 쭈욱 지나간다. 함께 진행해 온 일들을 이리 돌이켜 보니, 다양한 생각이 스친다.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면, 조금 더 경험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조금 더... 그저 욕심인 것일까? 아니면 지나 오며 줍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다시금 시야각 뒤쪽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탓일까? 생각이 많아서 였는지, PPT 넘겨 주는 타이밍이 슬쩍슬쩍 엇맞는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들여다 보고, 다시금 스스로의 시각을 날카롭게 다듬자. 그리고 가능하면 나부터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자...
라온 대표님의 사례 발표가 끝나고 이야기는 느낀점과 학교 외부 봉사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봉사시간을 모으기 위한 활동으로 시작했어요. 근데 이게 계속하다 보니 스스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계속했던 것 같아요.”
높지만 단호한 라온 대표님의 목소리가 포럼장을 통한다. 이런 자리가 되었건, 달그락에서가 되었건 대표님과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법 놀란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저 교과서를 읊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라온 대표님과의 대화는 그렇지 않다. 이런 자리는 자고로 향을 옮기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다. 하지만 생각만큼 이 향이 잘 옮아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그리고 경험이 조금 더 멀리 퍼져, 라온 대표님이 가진 향이 옮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빙빙 돈다.
라온 대표님은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다. 사실 입시를 이유로 달그락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꾸준히 달그락 활동을 해나간다. 가끔은 입시에 시달려, 시험 이야기를 하며 특유의 한숨을 피워 올리곤 하나, 늘 부지런히 라온을 꾸려간다. 그 활동성에서 늘 한 수 배운다. 그 활동성이 피운 자그마한 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옮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 그렇게, 한 명 두 명 향에 끌려 다시 제 향을 피워 올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희망 사항을 담아, 대표님이 마지막으로 포럼장에서 이야기했던 한마디를 옮겨 본다.
“청소년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할 기회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김정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