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3/2026
"지역은 사업을 유치해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발견할 때 살아난다"
지난 3월 24일, 타이완 난터우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대만의 형제 허페이준(何培鈞 )과 패트리샤(Patricia Lee )가 소개해줬다. 죽이는 곳이라며, 내가 정말 좋아할 사람이라면서 신나게 나를 인도해줬다.
처음에는 오래된 로컬 푸드 브랜드를 방문한다고 생각했다. 맛집을 방문한 줄 알았는데, 실은 한 개의 순환 시스템을 만났다.
쌀로 만든 떡과 가공식품, 그리고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 충분히 흥미로운 사례라고 여겼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만난 것은 한 브랜드가 아니라 한 집안의 시간, 그리고 한 사람의 실천이 만들어낸 지역의 순환 구조였다는 것을.
그 브랜드는 粿家幫 THE RICE HOME이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이들은 4대째 이어져 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산업의 형태를 바꾸어 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다음 세대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집안의 태도였다. 그 문장만 읽으면 전통 있는 식품 브랜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현장은 그보다 훨씬 깊었다. 쌀가공식품의 역사 위에 농업이, 축산이, 식농교육이, 토양과 생태를 다시 이해하려는 시도가 함께 놓여 있었다.
어떤 집안은 맛을 지킨다. 어떤 집안은 기술을 잇는다. 그러나 더 드물게는, 한 집안이 땅과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다음 세대로 넘긴다. 난터우에서 만난 粿家幫은 바로 그런 집안이었다.
이 집안의 시간은 흥미롭다. 쌀로 만든 떡으로 가족의 삶을 지탱해 왔고, 어느 세대에서는 서양 베이커리 기술까지 받아들였다. 나는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의 헤리티지는 보존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살아남는 전통은 자기 시대의 언어를 배우고, 필요한 기술을 흡수하며, 그러나 자기 뿌리를 놓지 않는다. 쌀의 기술 위에 베이커리의 감각이 더해졌고, 다시 오늘에 와서는 먹거리 제조를 넘어 농업과 축산, 환경과 교육까지 시야가 넓어졌다. 이 집안은 같은 일을 반복해온 것이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시대마다 다른 가지를 뻗어왔다.
하지만 내가 더 크게 흔들린 이유는 브랜드의 역사보다, 그 현장을 설명하던 한 사람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과장하지 않았다. 거창한 언어도 쓰지 않았다. 손에는 흙을 들고 있었고, 닭장을 보여주며 온도를 이야기했고, 나무와 목재와 지렁이와 냄새 없는 축사의 구조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흙과 식물, 동물의 관계를 이해하면 탄소를 줄일 방법이 보인다고 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 이상 배출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이는 방식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그 말은 추상이 아니었다.
현장 기록에 따르면 그는 버려질 목재를 태우지 않고 농장 바닥재로 활용하는 이유, 나무와 녹지가 닭장의 미기후를 조절하는 원리, 검은 흙과 탄소의 관계, 경운과 단기작물 재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는 구조, 지렁이를 통한 정화와 순환을 직접 설명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청년 농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식품 브랜드 대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얕다. ESG 실천가라는 말은 지나치게 문서 같다.
내게 그는 헤리티지를 오늘의 생태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의 기술을 물려받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쌀가공의 역사 위에 농업과 축산을 다시 연결했고, 생산의 논리를 토양의 논리와 접속시켰다.
상품을 만들면서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런 유형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대개는 가업을 잇는 사람이 제조에 집중하거나, 농업을 하는 사람이 유통을 분리하거나, 브랜드를 하는 사람이 생태를 캠페인 문구로 다룬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 흐름 안에서 움직였다.
이 로컬 브랜드는 방목 계란, 식농교육, 친환경 농촌 환경 조성 등을 함께 내세우고 있고, ‘糧知放牧雞蛋’은 지렁이 생태 동력 순환을 기반으로 한 농장, 비케이지 사육, 동물복지 표지, 무항생제·무약물 잔류를 강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은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다. 한 지역에서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키우고, 어떤 환경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 분명한 시스템이다.
나는 이 사례를 보며 지역활성화 정책이 자꾸 놓치는 지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종종 지역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유치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려 한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이미 그 지역 안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감각과 기술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알아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지역은 원래 사람을 키워내는 곳이었다.
문제는 지금의 정책이 너무 자주 ‘비어 있는 지역’을 상정한다는 데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새로 설계도를 펼치고, 외부 프로그램을 얹고, 교육을 통해 인재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는 이미 씨앗이 있는 경우가 많다. 조용히 가업을 이어오며 기술을 축적한 집안, 시장과 논밭과 축사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 상품과 토양과 공동체를 한 흐름으로 보는 사람. 이런 이들은 대개 말이 앞서지 않는다. 실천이 먼저다. 그래서 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정책의 역할은 여기서 달라져야 한다.
억지로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쏟기보다, 이미 지역 안에 존재하는 실천가를 발견하고, 그들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북돋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발굴은 단순한 선정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시간의 두께를 읽어내는 일이다. 지원도 단순한 보조금 지급이 아니다. 그 사람의 구조가 더 넓게 작동하도록 연결해주는 일이다. 브랜드가 있다면 유통과 교육을 잇게 하고, 농장이 있다면 연구와 체험을 잇게 하고, 가업이 있다면 다음 세대와 지역 청년이 접속할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없는 것을 발명하는 정책보다, 있는 것을 보이게 하고 자라게 하는 정책이 더 오래 간다.
특히 지역소멸 대응의 관점에서 이 점은 더 중요하다. 지역이 사라지는 이유는 인구 숫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삶의 구조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생산과 가공, 판매와 교육, 농업과 돌봄, 생태와 경제가 서로 분리되면 지역은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이 요소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지역은 회복의 실마리를 갖게 된다. 그 사람 한 명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을 중심으로 회로가 생긴다. 기술이 이어지고, 관계가 생기고, 다음 세대가 들어올 이유가 생긴다.
그래서 난터우에서 만난 이 사례는 단순히 ‘좋은 로컬 브랜드’로 소비되면 아깝다.
이것은 지역이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자기 방식으로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가업의 헤리티지를 오늘의 문제의식과 접속시키고, 먹거리의 가치를 토양과 생태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며, 상품의 경쟁력을 지역의 순환 구조와 묶어내는 방식. 이런 사람이 있는 지역은 쉽게 낡지 않는다. 그곳에는 팔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정책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청년을 ‘육성’할 것인가만 묻지 말고, 어디에 이미 다음 시대의 실천가가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사업을 ‘투입’할 것인가만 고민하지 말고, 누가 이미 지역 안에서 순환의 문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발견했다면, 그 사람이 더 잘 연결되고 더 넓게 실험하고 더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지역활성화의 성패는 프로그램의 수가 아니라, 이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날 그가 손에 올려 보여주던 흙을 아직도 기억한다.
검고 부드럽고 살아 있는 흙.
그 흙은 단지 농장의 상태를 보여주는 재료가 아니었다.
한 집안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기술의 결과였고, 앞으로도 이 지역이 먹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처럼 보였다.
지역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미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때로는 닭장의 온도를 낮추는 일에서 시작되고, 태워질 나무를 바닥에 까는 일에서 시작되고, 흙 한 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도록 곁에서 북돋는 데서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헤어질때 악수를 청하자 그는 흙으로 손이 더럽다며 손사레를 쳤다.
나는 에이, 하며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나의 손을 꽉 쥐며 다른 손으로 나의 손등을 툭툭 쳤다.
그의 손에 담긴 흙의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토양 기반의 로컬 시스템 빌더를 만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