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1923년 9월 간토코리안제노사이드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지구촌의 평화활동가와 제노사이드의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의 네트워크입니다.

1957년, 아직 다이쇼 시대의 기억이 선명하던 시기.도쿄 다나시 지역의 노인들은 간토대지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경찰서장이 남자들에게 몽둥이나 칼을 들게 하고, 조선인을 보면 죽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공...
30/03/2026

1957년, 아직 다이쇼 시대의 기억이 선명하던 시기.
도쿄 다나시 지역의 노인들은 간토대지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서장이 남자들에게 몽둥이나 칼을 들게 하고, 조선인을 보면 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 기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경찰은 조선인을 보호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기록이 남아 있다.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일까.

“조선인을 보면 죽이라” — 다나시에서 드러난 두 개의 기억1957년, 아직 다이쇼 시대의 기억이 선명하던 시기.도쿄 다나시 지역의 노인들은 간토대지진 당시를 이

"왜 사람들은 이웃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였을까?(1923년 9월, 그날의 목소리...)Q. 증언자가 폭력의 세부 장면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A. 증언자는 죽창, 군도, 고문과 같은 폭력의 장면을 매...
17/03/2026

"왜 사람들은 이웃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였을까?
(1923년 9월, 그날의 목소리...)
Q. 증언자가 폭력의 세부 장면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A. 증언자는 죽창, 군도, 고문과 같은 폭력의 장면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서술은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서 폭력의 실재성과 잔혹성을 독자에게 체험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폭력이 개인 한 명의 행동이 아니라 군중 전체가 참여한 집단적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폭력에 가담하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책임 의식이 희석되고, 폭력은 '집단의 행동'이라는 형태로 정당화되기 쉽다.
따라서 이 증언의 상세한 묘사는 단순한 잔혹성의 기록이 아니라 집단 폭력이 어떻게 인간의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기사 中에서 -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다나하타 기요시의 증언이 공개됐다. 그는 형무소 죄수까지 가세한 800명 규모의 수색대가 조선인을 고문해 죽이고, 시체를 200그루가 넘는 벚나무에 매...

'자경단이 될 수 없어 분통했다!!' - 왜 한 소년이 ‘자경단에 들어가겠다’는 정동을 보였을까?- 지진 직후의 공포와 불안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형성된 조선인 인식 때문인가?- 그 인식은 어떤 공적 구조(학교·매...
09/03/2026

'자경단이 될 수 없어 분통했다!!'
- 왜 한 소년이 ‘자경단에 들어가겠다’는 정동을 보였을까?
- 지진 직후의 공포와 불안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형성된 조선인 인식 때문인가?
- 그 인식은 어떤 공적 구조(학교·매체·국가 선전)를 통해 형성되었을까?

후시미 고지의 증언은 이러한 정동 전이가 지역 사회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기록은 후시미가 성인이 된 뒤 회고하며 작성한 것이다.
지역에서는 “열두 살 이상은 방위대를 조직하라”는 호출이 내려졌고, 청소년들까지 조선인의 공격을 막는 방위 조직에 동원되었다. 소년은 자경단에 참여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누나는 (주변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아직 열두 살이 안 되었으니 너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소년은 자신이 자경단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분통해하는 정동을 드러낸다. 이는 선동된 공포가 청소년층까지 확산되어 공동체 전체를 동원하는 구조적 폭력의 단계(暴)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토학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일본의 아이들은 조선인을 색출하는 마을에서의 기억을 통해 "자경단 놀이"를 지속되었다고 한다.
당시 14세였던 청소년이 후시미 고지는 이후 물리학자가 되었고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증언에서 중요한 점은, 당시의 ‘조선인 폭동’이 결국 데마였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덧붙이듯이, 이러한 유언비어가 단순한 소동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카나와 인근에서는 사건이 진정되었지만, 시나가와 부근에서는 실제로 유혈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허위 정보로 촉발된 선동이 지역에 따라 실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다시 말해, 이 사례는 유언비어에 의해 형성된 공포의 정동이 공동체를 동원하는 구조적 폭력으로 전이되고, 그 일부 지역에서는 결국 조선인 학살이라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후시미 고지(伏見康治) 〔물리학자·정치가, 당시 14세. 다카나와 니혼에노키에서 피해〕
9월 3일인지 4일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조선인이 공격해 온다”는 소문이, 마치 실제 바람이 불기라도 하듯 거센 기세로 지나갔다. 곧이어 자위단의 요청이 있었고, 니혼에노키 사람들은 이사라고 근처의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 황족 저택 정원으로 피신하라는 포고가 전해졌다. 아버지는 장식용 들보 위에 놓여 있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창과 칼을 내려 먼지를 털고 무장했다. 나는 어머니와 자매들을 데리고 자전거를 밀며 다카마쓰노미야 저택으로 피신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때 어머니는 정말로 공포에 질리고 마음이 쓰여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윽고 “12세 이상은 방위대를 조직하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나는 “너는 아직 열두 살도 안 됐으니 나갈 필요 없어”라며 나를 말렸다. 나는 비통한 얼굴로 방위대에 들어가려 했는데, 마침 그때 조선인 폭동은 유언비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카나와 일대의 이야기였고, 시나가와 근처에서는 유혈 사태가 있었다고 한다.
(후시미 고지, 「성장기 기록」, 후시미 고지 선생 백수 기념회, 2007년)
伏見康治 [物理学者、政治家。当時14歳。高輪二本で被災
9月3日か4日だったか、そろそろ暮れ るという時刻に、「朝鮮人が攻めてくる」と いう噂が、本当に物理的な風でもあるかの ような勢いで通過していった。 ついで、自 衛団のよびかけがあって、 二本榎の連中は 伊皿子の近くの高松宮の庭園に逃げ込めと いう布令が伝わってきた。 父は、 なげし に置いてあった先祖伝来の槍や刀をおろし て塵を払って武装したりした。 僕は姉妹 母を連れて自転車を押しながら高松宮家 へ逃げこんだ。
「足が地につかない」という言葉があるが、 母はこの時本当に足が地につかない様子で あった。そのうちに「12歳以上の者は防衛 「隊を組織しろ」という声がかかってきて、 姉が、貴方はまだ2になっていないのだか ら出なくてもいいのよ、などと引きとめる。 僕は悲痛な顔をして防衛隊に加わろうとし丁度その時に、朝鮮人暴動はデマだとい う声が伝わってきて一件落着。 しかしそれ は高輪近辺だけの話で、 品川あたりでは流血の事件があったという。
https://www.1923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69

1983년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한국-조선인학살의 기억을 60년만에 입을 열어 증언한 방주원씨는 1923년 당시 유학생이었다. 그는  학살의 광풍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으나,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감시 속에 간토학살의...
23/02/2025

1983년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한국-조선인학살의 기억을 60년만에 입을 열어 증언한 방주원씨는 1923년 당시 유학생이었다. 그는 학살의 광풍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으나,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감시 속에 간토학살의 처참함을 발설할 수 없었으며, 해방이후에도 친일정권 하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다. 60년이 지나서야 증언을 할 수 있었고, 니시자키 마사오씨의 기록집에 담겨졌으며, 책으로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계엄령은 한 번 발동되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잃는다. 권력자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혐오감을 증폭시켜가며, 국가권력과 함께 가공할 폭력을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문명화된 이 시대에도, 민주화된 국가에도 파시스트 권력자들은 '계엄령'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늘 만지작거린다.

--------

9월 3일, 4일 경 화재가 진정되었다. 4, 5일 지나면서 전신주에 "불령선인 200명 나카노에 폭탄투하", "시나가와에서 불령선인 3천명, 폭동을 일으켜 쳐들어오다. 자경단이 막았지만 패했다" 라고 적힌 삐라가 붙어있었다. 신문사 이름으로 유언비어 삐라를 배포했다. 코이시카와 부근에선 종을 울리며 "불령선인이 다리 밑에 들어갔다" 하며 난리를 쳐 조사해 보니 말뚝이었다고 한다. 조선인 식별법은 "머릿수건을 둘러봐해서, 잘 하면 일본인, 못하면 조선인"이라 했다. 나는 학살 현장을 보지 못했다. 살해 당할까봐 밖에 나가지 않았다. "

-1983년 당시 유학생이었던 방주원 씨의 증언 중에서

이 증언은 1923년 당시 유학하고 있던 조선인 방주원씨의 증언이다. 방주원씨를 인터뷰한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니시자키 마사오 봉선화회 이사이다. 1983년 당시 니시자키 마사오씨는 대학생으로서 스미다구에...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총 10번의 계엄령이 선포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에서 4번, 박정희 정권에서 4번, 전두환 정권에서 1번,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1번이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주역들은 하나같이 불의한 ...
16/12/2024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총 10번의 계엄령이 선포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에서 4번, 박정희 정권에서 4번, 전두환 정권에서 1번,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1번이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주역들은 하나같이 불의한 권력이었다.
1923년 9월 일본 야마모토 콘베에 내각은
대지진을 핑계로 거짓뉴스를 퍼뜨리고, 그 거짓뉴스를 사실인양 호도하면서 계엄령을 발표하여, 수천의 재일조선인과, 수백의 중국인, 그리고 십수명의 일본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을 학살했다.
- 독일문학가 후쿠다 준조의 증언
출처 : 1923뉴스(http://www.1923news.com)
https://www.1923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20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총 11번의 계엄령이 선포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에서 4번, 박정희 정권에서 4번, 전두환 정권에서 1번,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1번이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주역들은 하나같이 불의한 ...

태백과 정선의 마을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가늠해보는 답사여행에 함께 떠나요~~답사 바로 신청https://m.site.naver.com/1vsDc
23/10/2024

태백과 정선의 마을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가늠해보는 답사여행에 함께 떠나요~~
답사 바로 신청
https://m.site.naver.com/1vsDc

사라지지 않은 제국의 망령들을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을지 귀한 분들을 초청하여 함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3/10/2024

사라지지 않은 제국의 망령들을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을지
귀한 분들을 초청하여 함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토요일 목회하는 벗이 교인들과 함께 아우내쉼플스테이에서 가을수련회를 하러 아우내쉼플스테이에 왔습니다. 미리 간토학살역사교육을 수련회 프로그램으로 넣었다며 안내를 부탁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이들은 풋살장으로 가서...
07/10/2024

지난 토요일 목회하는 벗이 교인들과 함께 아우내쉼플스테이에서 가을수련회를 하러 아우내쉼플스테이에 왔습니다. 미리 간토학살역사교육을 수련회 프로그램으로 넣었다며 안내를 부탁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이들은 풋살장으로 가서 잘 놀도록 하고, 비교적 시간이 충분하여 차분차분 안내와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는 그 모습과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역사적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을 방문하시려는 분들께서 이곳으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https://1923museum.modoo.at/

Address

Cheonan
31254

Opening Hours

Tuesday 10:00 - 16:00
Wednesday 10:00 - 16:00
Thursday 10:00 - 16:00
Friday 10:00 - 16:00
Saturday 10:00 - 16:00

Telephone

+82415521923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Organization

Send a message to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