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2026
[기획 칼럼 1] 지방 없는 지방선거: 중앙정치의 대리정치로 전락한 지방자치
윤현식 노동 · 정치 · 사람 정책위원
https://laborpolitics.org/?p=9155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승자가 없는 선거였다. 내란사태 이후 고작 1년 반 만에 치러진 선거였음에도 내란에 동조한 정당의 건재함은 그대로 드러났고, 내란척결을 내세웠던 보수 중도 정치세력은 그 한계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그러나 승패를 넘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선거임에도 지방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여론을 장악한 이슈는 서울시장과 대구시장 등 주요 광역단체장이나 평택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의 향방과 같은 굵직한 중앙정치 사안이었다. 하다못해 교육감선거조차 시중의 관심사에 발도 걸치지 못할 정도로 지방의 의제가 실종된 선거였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이 실종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지방정치 자체가 형해화된 현실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지방정치 자체가 중앙정치에 종속된 상태에서 지방의 의제와 지역의 현안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현상이 바로 공천이다.
보수양당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의 기준을 보자. 지역의 이해와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내세우기보다는 중앙정치와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느냐가 공천의 기준이 된다. 특히나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유착 정도가 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회의 의원이 될 확률과 직결된다. 공천의 기준이 이렇게 되면 사실상 지역정치라는 건 허울만 남게 된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선 보수양당이 명목상으로라도 후보를 거르는 장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People Power Aptitude Test)’를 시행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선출직 공직자 평가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이번 제9회에서는 그나마의 장치들조차 시행은커녕 제시조차 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태극기부대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고, 더불어민주당은 ‘명픽’이라는 이름의 대통령 지명이 암중에 횡행했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민의 불신과 외면을 자초했다. 지역의 주민들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할 유인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는 투표 결과에서 명확하게 확인된다. 대표적인 예가 대규모 무투표 당선자 사태다. 이번 지선에서는 기초단체장 3명을 비롯해 총 519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지방선거 선출 총 정원의 12.3%에 해당하는 숫자다. 다시 말해 10명 중 한 명 이상이 후보 등록만 하면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투표당선은 보수양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사실 무투표당선만이 아니다. 선거를 하더라도 보수양당의 패권이 작동하는 기초지역의 선거에서는 각 당의 후보들이 복수 출마하여 동시에 당선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군소정당은 후보를 낼 의지마저 상실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정치판은 보수양당의 분할구도로 정체되고,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그런데 최근 지역정치를 더욱 중앙정치에 종속되도록 만들 수 있는 법이 등장했다. 지방선거 직전에 정당법 개정이 있었는데, 개정 규정에 따르면 그동안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지역의 당원협의회에 사무처리를 위한 사무소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사무소는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1개소를 둘 수 있도록 했는데, 2003년 정당법 개정 이전의 지구당 사무실을 복원한 것이다. 보수양당의 반민주적 정당운영의 폐해 때문에 폐지하게 되었던 지구당이 부활한 것인데, 과거의 구태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 그 당시에도 지구당의 폐지는 잘못된 방향이었다. 지구당을 통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유통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지역당부의 운영을 왜곡하는 등 문제가 있었던 점은 분명하나, 이러한 폐단은 당 운영을 민주적으로 전환함으로써 해결할 일이지 지구당 자체를 아예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위 ‘오세훈법’에 의하여 지구당이 폐쇄된 후 정작 보수양당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반면, 풀뿌리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근간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민주노동당 등 진보좌파 군소정당은 조직 운영의 기반이 붕괴되는 참화를 입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법 개정과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에 유학하던 한 독일인 정치학자가 아예 단행본을 내면서 비판하기까지 했었다(하네스 B. 모슬러,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지구당 부활 자체는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정당법 개정의 문제는 지구당의 구태를 다시는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제반의 장치 없이 지구당만 덜컥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전국정당의 지구당을 중앙당의 하청기구로 만들지 않기 위한 유력한 대안 중 하나는 지역에서 지구당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정치결사를 보장하는 것이다. 바로 그 역할을 지역정당이 수행할 수 있다. 지역의 사안과 의제에 천착하는 지역정당의 활동은 전국정당의 지구당에게 위기의식을 부여할 수 있고, 이 두 지역정치결사가 경쟁하는 가운데 풀뿌리민주주의, 지방정치가 활성화된다.
그러나 보수양당이 장악한 국회에서는 여전히 지역정당을 보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초 지구당 부활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되었을 때도, 발의한 보수양당의 의원들은 과거의 불미스러운 기억을 꺼낼 수 있는 ‘지구당’이라는 말 대신 ‘지역당’이라는 정체성도 없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지역정당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현재 보수양당 중심의 중앙정치판에서 지방정치는 산산히 가루가 되고 있다. 중앙정치판의 입장만 지역에 강제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지역사안은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계속 강조하거니와, 지방정치는 지역의 의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의제를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다루는 지역정치가 제도권 정치 안에서 힘을 받을 때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지역정치, 풀뿌리민주주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의 활성화에는 지역정당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