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청년회

한국불교청년회 대한민국 각 지역의 불교청년들을 대표하는 청년들이 하나가 되어 모인 대?

한국불교청년회는 1920년 독립운동가 이자 시인이었던 만해(卍海) 한용운 (韓龍雲, 1879. 8. 29 ~ 1944. 6. 29) 대선사를 주축으로 경남 하동군 쌍계사 팔영루에서 민족독립과 불교중흥을 위해 "조선불교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 되었고 "1947년 5월 한국불교청년회"로 개명되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불교청년회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은 자신의 정권강화를 위해 불교재산을 정부에 귀속시키려 했고, 이로 인해 “불교 분규”를 일으켰다. 당시 불교계는 정부에 이용당하며 분열하였고 이로 인해 불교계는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1960년 4. 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이 하야한 후, 창설된 국가재건위원회의 위원장

박정희는 결혼을 인정하는 교화승과 독신을 주장하는 수행승을 큰 대화조자 없이 하나의 종단으로 강제 통합하였고 당시의 정권실세 등이 수행승을 지원하는데 반발한 교화승들이 "1970년 5월 8일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종" 하면서 불교계는 결국 대분열하게 되었다.

당시 지식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불교청년들은 불교계의 분열과 독재정권의 불교탄압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이런 활동은 1980년 5월 이후 들어선 군사정권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군사정권은 사회참여 의식이 강한 청년단체를 탄압했고 그 중심에 있던 한국불교청년회는 큰 타격을 받으며 몰락에 가까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한국불교청년회의 몰락은 한국불교의 성장동력의 상실로 이어졌고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선각자들이 하나의 마음이 되어 2014년 10월 23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3000명의 신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다시 단체를 중창하였다.

현재는 이사장 1인과 회장 1인을 비롯해 15인의 이사, 8명의 실장 등이 중앙집행부로서 단체를 이끌고 있고 중앙집행부와 함게 전국의 17개 광역시도 및 100여개 지역의 위원장이 선임되어 한국불교의 청년들을 대표하며 종교계 청년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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